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일왕의 사죄발언문제와 관련,그 성과를 놓고 국내에선 아직도 논란이 일고 있으나 일본측은 이를 크게 성공을 거둔 이벤트로 평가하고 있다.두 나라간의 이같은 시각차는 노대통령이 「과거의 역사」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만족스러운 것으로 선언한 데 따른 것 같다. 일본의 모든 언론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앞으로의 한일관계는 과거와는 절연된 동반자적 관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풀이되고 있다.
즉 일본은 노대통령의 이번 선언으로 사죄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재빨리 못을 박아버린 셈인데,노대통령이 이같은 단안을 내리기 까지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아쉬운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우선 일왕의 사죄발언 수위를 놓고 노대통령이 방일전,국내에서 열화처럼 들끓었던 전국민의 함성에 일왕이 어느 정도 접근했는가 하는 점이며,일본국민성 특유의 「다테마에」(건전ㆍ겉치레)와 「혼네」(본음ㆍ속마음)라는 2중성이 노대통령의 방일에 작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노파심이다. 일왕이 일본에서도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는 「통석」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도,또 집권 자민당내 일부 의원들의 노대통령에 대한 비환영적인 태도들도 개운찮은 여운을 남겼다.
특히 오자와(소택) 자민당간사장의 한국에 대한 망언과 그가 노대통령 방일중 보인 냉담한 반응등은 마음 걸리는 대목이기도 한데 이에 곁들여 이시하라ㆍ신타로(석원 신태랑) 의원의 한국비난도 어쩌면 동일선상이 아닐까 하는 점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시하라 의원은 일본에 「태양족」의 물결을 일으킨 작가출신으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인데,그는 지난 24일 워싱턴에서 오자와 이상의 폭언으로 노대통령의 방일에 재를 뿌렸다.
그는 『한국은 지난번(전두환대통령) 빚을 얻으러 올 때도 사죄하라고 큰 소리를 쳤는데 도대체 매번 사죄하라는 얘기냐』고 일왕 사죄 불가론을 제기했다. 그가 극우파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자민당내에 이같은 분위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번 노대통령의 사죄요구의 종결선언은 어느면 「과거의 역사」에 대한 끝맺음이 아니고 「새로운 인식의 출발점」이기도 한데 우리의 이같은 진의가 일본에 어떻게 투영될 것인지는 지금부터 지켜볼 일이다. 바야흐로 한일 두나라가 새로운 출발선상에 놓여있는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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