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장벽 철폐등에 기대/일 대중문화 침투가 문제지난24일부터 26일까지 2박3일간에 걸친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은 과거 어떠한 정상외교보다도 어려움을 겪은 끝에 실현됐다. 36년간 식민통치라는 한일 양국의 과거사가 걸림돌이 되어 방일자체를 재검토의 문턱까지 몰고 갔던 이번 방일 준비과정은 우리 외교사에 기록될 만한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한일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은 그 자체로서 적지않은 의미를 지닌다. 84년에 이어 2번째로 이루어진 대통령 방일은 제2의 「국교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 방일을 계기로 한일 양국은 일단 지역적 동반자로서의 결속을 다짐했다. 이에따라 양국은 동북아의 지역공동체로서 정치ㆍ경제적 측면에서 폭넓은 협력관계를 강화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한일 양국은 이번 노대통령 방일의 의미를 과거사 청산과 21세기를 대비한 우호협력관계의 증진에서 찾고 있다. 이중 특히 미래지향적 협력관계 구축은 국제정세의 변화와 관련,가장 중요한 의의로 강조된다.
양국은 그동안 ▲구주공동체(EC) 통합과 미국ㆍ캐나다의 자유무역제등 지역중심의 경제블록화 추세 ▲미소및 중국관계 변화등 국제정세 변화 ▲97년 중국의 홍콩인수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군감축에 따른 안보환경의 변화등 국제질서 개편에 공동으로 대처할 필요를 느껴왔다.
따라서 노대통령 방일은 향후 아태지역의 주역으로 나서려는 한일 양국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한일 양국은 노대통령 방일을 계기로 마련된 협력분위기아래 앞으로 많은 분야에서의 「주고받기」를 하게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5일 양국간 개별각료회담에서 체결된 ▲사증수수료 면제및 복수사증 발급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해상에서의 수색구조및 선박의 긴급피난에 관한 협정등은 이러한 협력관계를 위한 기반조성작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우리측은 우호협력관계라는 대전제에서 일본측에 무역역조 시정및 첨단과학기술이전등을 요청했다. 특히 연간 40억달러에 이르는 무역역조에 대해선 노대통령이 일 의회연설에서 직접 강조하는등 역조해소를 위한 일본의 노력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에대해 일본측은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한국에 파견하고 무역마찰 사전방지를 위한 양국간 민관 합동정책협의 기구를 신설키로 했다.
그러나 일본이 무역역조 해소를 위해 근본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특별히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는 관세ㆍ비관세장벽을 어느정도 철폐ㆍ완화하느냐에 따라 일본의 의지가 평가될 것이다.
양국은 첨단과학기술 이전문제와 관련,▲항공우주 해양 유전공학 신소재분야 등에서 양국 공공연구기관간의 연구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연구원및 과학기술 정보교류,연구기관간 협정체결을 적극 지원키로 합의했다. 특히 일본측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신소재 특성평가센터의 성공적인 설립운영을 위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 이전문제는 일본정부의 이같은 적극적인 의사표시에도 불구,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과학기술은 정부보다도 민간기업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 많은 만큼 우리측이 일본정부와 어떻게 협조해 민간기업간의 첨단기술 이전을 구현할 것인가가 과제이다.
우리측이 노대통령 방일을 계기로 무역균형 확대및 첨단과학기술 이전문제를 제기한 반면 일본측은 문화학술 교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은 양국간의 공동영화제 개최를 제의,우리측의 수용을 강력히 요청했다. 이에대해 정부는 국민감정을 이유로 현단계에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앞으로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간 협력체제의 강화라는 명제아래 우리측은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협조를 얻는 대신 그동안 경계해온 영화ㆍ가요 등 일본 대중문화의 상륙을 허가해야 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문화의 침투를 다른 분야의 협력관계속에서 어떻게 적절히 걸러낼 수 있는가가 또 하나의 과제이다.
양국간 동반자관계 구축의 전제조건이었던 과거사 청산문제는 이번 노대통령 방일을 계기로 상당히 진척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왕사과문제는 「통석」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논란의 소지를 남기기는 했으나 우리측이 요구해온 가해자ㆍ피해자를 명시함으로써 최소한 정부차원에서는 완전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타결된 재일교포3세문제는 일본측으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얻어냄으로써 교포3세들의 법적지위를 대폭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해결됐다. 일본측은 재일교포1ㆍ2세의 법적지위도 3세에 준해 개선되도록 적극검토하겠다고 밝혀 큰 기대감을 주고 있다.
이처럼 한일 양국은 노대통령 방일을 계기로 21세기를 향한 진정한 동반자로서의 협력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한일 양국,특히 일본이 진정한 과거청산과 각부문에서의 협력을 위해 어느정도 노력하느냐에 따라 우호협력관계의 발전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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