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식 100여명에 매일 무료대접/“며느리밥보다 편안”웃음/「낮잠」으로 허기달래는 고통없어져/낯설은 사람도 함께 나누며 “한가족”/김목사가 자비털어 시작… 운동본부서 쌀지원관악산을 찾는 노인들은 이제 점심때를 기다리고 있다. 식사때가 되면 슬그머니 숲속에 들어가 한잠 자고 내려오는 결식 노인들이나,용돈이 궁하지않아도 손자생각에 1천원짜리 점심먹기를 주저하던 노인들이 이제는 함께 모여앉아 따뜻한 밥을 먹으며 담소를 즐길수있다.
도심의 파고다공원과 함께 노인들이 제일 많이 찾는 관악산 경로구역에서는 이제 밥을 굶는 노인은 없다.
26일 낮12시 관악산등산로 입구에서 1㎞쯤 올라가 있는 경로구역에 마련된 「사랑의 쌀식당」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1백여명이 멍석과 근처비탈에 모여 앉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과 국으로 점심을 들고 있었다.
반찬은 김치와 깻잎조림 젓갈 우거지국에 7∼8평남짓한 좁은 공간이지만 노인들의 표정은 밝고 편안했다.
이곳은 원래 관악구노인회의 관악산특별분회 휴게소로 노인들이 발을 쉬고 비를 피하는 곳이었다.
한국일보사의 후원으로 지난 3월부터 「사랑의 쌀나누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본부가 이곳에 자그마한 간이식당을 마련한 것은 지난8일. 운동본부에서 일하는 김태근목사(33)가 관악산에 점심을 굶는 노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남몰래 자비를 털어 취사도구와 부식을 마련,밥을 지어주는 것을 알고 현재 20억원 가까운 성금을 거둔 운동본부가 사랑의 쌀을 대기 시작했다.
관악구노인회에 의하면 경로구역을 매일 찾는 노인 3백여명중 점심을 굶는 사람이 약 30%,영세민이 약 30%로 반수이상이 점심을 해결하지 못해왔다.
김목사와 운동본부는 당초 매일 50명분의 쌀과 부식을 제공했으나 이곳을 찾는 노인들의 수가 점차 많아져 이제는 하루평균 1백∼1백50명의 밥을 지어주고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영세노인들은 처음에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줄 알았다가 사실을 알게되면서 이곳을 「사랑의 쌀식당」으로 부르게 됐다.
관악구 신림9동 노인회에서는 자원봉사 할머니들이 나와 김목사의 부인 윤애순씨(33)와 함께 취사와 배식 설거지를 돕고있다.
소문이 나자 용돈이 부족해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던 노인들이 아침부터 이곳을 찾게됐다. 점심때가 되면 낯익은 사람끼리도 어색해했던 노인들은 스스럼없이 한 가족처럼 어울리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사랑의 쌀식당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어울려 자식들 얘기를 해가며 하루해를 보내고 있어 이곳은 관악산의 명소가 됐다.
봉천6동에 산다는 이태석할아버지(83)는 『그동안 몸도 아프고 점심걱정도 생겨 나오지 못했는데 이제는 매일 오고싶다』면서 『며느리가 해주는 밥보다 휠씬 맛있는 것같고 마음도 편하다』고 웃었다.
경로우대증등을 가진 어려운 노인에게 점심을 준다는 관악산노인분회 박덕철 회장(70)은 『말은 안하지만 밥을 굶는 분들이 많은 것을 알면서도 대책이 없어 늘 가슴이 아팠다』면서 『미역국이 나온날엔 마침 생일을 맞은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한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목사는 사랑의 쌀식당이 관악산노인들의 안식처로 자리잡아가자 서울대 의대학생회의 도움을 얻어 무료진료도 하고 자원봉사자를 찾아 이발과 노인문제 상담도 해줄 계획이다.
또 결식노인을 위한 사랑의 쌀식당을 전국 주요도시에 설치할 구상을 갖고 「관심있는 모임회」를 만들어 회원을 구하고 있다.<한기봉기자>한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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