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언론서도 우리정부 「확대해석」에 의아/대국적으로 수용해도 응어리는 남을 것아키히토(명인)일왕의 대한사과발언중 「통석의 염」이란 말에 과연 사과의 뜻이 담겨있느냐를 놓고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를 「뼈저리게 뉘우치는 마음」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지난 23일 야나기ㆍ겐이치(유건일) 주한일본대사가 일왕의 사과문안을 전달할 때 최호중외무장관에게 『그렇게 해석해도 좋다』고 양해한데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유종하외무부차관도 『마음 아프게 뉘우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통석」이란 단어엔 결코 사죄나 사과의 뜻이 없다는게 우리 학자들의 한결같은 반론이다.
서울대 신용하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엔 통석이란 말을 썼다』고 전제,「통」은 「매우」라는 뜻이고 「석」은 「애석하다」 「가엽다」 「아깝다」는 의미로서 전체적으로는 「매우 애석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특히 통석이란 말은 자식을 잃었다거나 애인과 이별하게 된 것을 애석해할때 쓰는 표현으로,주로 손아래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라는게 신교수의 설명이다. 신교수는 또 자기가 아끼는 물건,예를 들어 값비싼 도자기를 실수로 깨뜨렸을 때 통석이란 말을 쓴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일왕의 만찬사 전체문맥을 살피면 사과의 뜻이 있을지는 모르나 통석이란 단어에는 사죄는 물론 사과의 뜻도 없다고 말했다.
신교수는 또 일본사람들은 자기네끼리는 조금만 실수해도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면서 정작 피해를 끼친 한국에 대해서는 왜 사과의 뜻도 없는 단어를 골라 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일본에서 교육받은 한양대 김용운교수도 통석의 의미에 대해 『우리말로 해석하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는 뜻이고,일본에서도 아름다운 꽃잎이 바람에 졌을때등에 쓰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일본인이나 일본말을 아는 사람이라면 통석이란 말에 사과의 뜻이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교수는 일본이 세계2차대전 패전을 종전,미점령군을 진주군,한중침략을 진출이라고 표현 또는 왜곡해온 것처럼 이번에도 통석이란 표현을 골라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말 사전에서 「통석」을 찾아보면 「몹시 애석하게 여김」(이희승 국어대사전) 「몹시 애처롭게 여김」(한글학회 큰사전) 등으로 돼 있다.
어디를 보아도 우리정부가 발표한대로 「뼈저리게 뉘우친다」는 뜻은 없으므로 사과의 뜻이 담긴 말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일본측이 『그렇게 해석해도 좋다』고 양해했다지만 일본국어사전 역시 「통석」이란 단어를 뼈저리게 뉘우친다는 식으로 설명해 놓은 것은 없다. 어느 사전이나 「몹시 애석해 하는 것」 (광사림)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 (일본 국어대사전) 「심히 애석해함」 (대한화사전) 등으로 돼 있다. 통석이란 단어자체의 어원이 한국이란 얘기도 있는만큼 해석이 크게 다를리도 없는 것이다.
결국 「통석의 염」이란 말만 놓고 보면 지난 84년 히로히토(유인)일왕이 「참으로 유감」이라고 한데서 조금 더 나간데 지나지 않고,사과의 뜻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문안전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시하고,「애석」의 주체를 밝힌것으로 보아 진전된 표현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사과한다면서 일본에서도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단어를 찾아낸 일본정부의 자세와,이를 아전인수로 해석해 넘어가려한 한국정부의 태도이다.
이번 일왕의 사과발언 문안작성에 참여했던 외무성ㆍ내각관방ㆍ궁내청관계자들에 의하면 당초 원안은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이 한국에서 유행했던 가수 남진의 유행가 제목과 같은데다,한국에서 이를 소재로 「사죄노래의 연습」이라는 신문 만화까지 등장하자 『국왕이 희화화된 발언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이 대두돼 통석의 염이란 표현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말을 사용한데 대한 일 정부관계자들의 명확한 설명은 없다. 일 언론들도 일왕의 사과발언이 헌법상 지위로 보아 최대한의 내용이라고 보도하면서도 한국정부가 통석의 염을 「뼈저리게 뉘우치는 마음」이라고 해석해 발표한데 대해서는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이말의 영역발표문인 「deepest regret」가 한결 이해하기 쉽고 말썽의 소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문 표현 역시 「후회한다」는 뜻이 있기는 하나 저지른 잘못에 대해 쓰는 사과표현으로는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이 문제에 있어 객관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 BBC방송은 25일 『일왕이 대한사과발언에서 『「Sorry」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사과한다」는 뜻의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얘기인 것이다.
대통령 방일전부터 문제가 되었고,일정부가 「고심」끝에 마련한 일왕발언문안을 우리정부가 사전에 전달받고도 그 내용을 검토하지 않았을리가 없다. 어쩌면 우리 요구대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시되고 「애석해 하는」주체가 분명해졌다는데서 서로 국내용으로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넘어가기로 양해한 인상이다.
이 정도의 일왕발언조차 못마땅해했던 일본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우리정부로서는 그래도 진전된 사과를 받아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외교적으로는 이제 과거문제가 마무리됐고,우리 국민이 이를 대국적으로 받아들인다해도 마음 한구석에 남는 찜찜한 감정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이 진정으로 사과하는 마음을 갖고 있느냐일 것이다.<최규식기자>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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