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풍차단불신씻을 「장치」필요/「진상」규명 미진땐 공신력 상처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실태에 대한 감사결과를 언론에 공개한 혐의로 구속된 감사원 감사관 이문옥씨(50)가 구속적부심에서 폭로한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재벌기업들이 부동산 투기로 불로소득을 취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감사원이 재벌의 탈세사실을 적발하고도 외부의 입김으로 감사를 중단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 이씨의 진술은 소문으로만 떠돌던 정경유착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더욱이 지난 87년 대통령선거와 88년 국회의원선거 당시 서울시가 시예산에서 88억원을 정보비ㆍ판공비 등의 명목으로 불법지출,선거자금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은 단순히 관권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차원을 넘어 정권의 도덕성 자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충분하다.
이씨의 진술내용이 모두 사실로 판명된 것이 아닌데다 관련된 재벌이나 서울시도 『이감사관의 폭로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고 있지만,18년간 감사원에 근무하며 경험한 사실을 구체적인 통계까지 인용해 폭로한 이씨의 진술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만큼 검찰등 사정당국에서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씨가 폭로한 재벌들의 각종 비리는 비업무용 부동산을 업무용인 것처럼 위장하거나 주식거래ㆍ기업합병 등을 통해 얻은 각종 이익금에 대한 세금을 포탈하는 「고전적」방법에서부터 이같은 탈법행위가 감사원에 적발될 경우 권력의 상층부나 감사원간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감사자체를 중단시키는 「초법적」로비활동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다.
이씨는 법정에서 『지난해 11월 중부지방 국세청에 대한 감사에서 삼성이 감사대상명단에 들어있는 것을 안 감사원 간부들이 「삼성은 손대지 말라. 제발 같이 좀 살자」고 호소하는등 특정재벌이 포함된 감사때마다 로비가 계속됐다』고 진술,재벌들이 감사원을 상대로 집요한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폭로하기도 했다.
또 재벌들의 압력을 받은 감사원 고위간부들은 부하에게 서슴없이 감사중단,감사대상제외 등의 지시를 내려 가장 공정하고 엄정해야 할 감사업무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자신이 직접 감사하다가 중단된 서울시와 삼성그룹의 경우 감사중단지시를 받은 뒤 감사원간부로부터 『다른 사람은 잘도 피해다니는데 당신은 왜 눈치없이 물의를 일으키느냐』는 질책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과세실태를 조사하던 지난해 8월 안경상 당시 감사원사무총장은 이씨를 불러 『언론계 고위인사를 만났더니 감사원이 행정개혁위원장 신현확씨(삼성그룹 명예회장)가 감사원기능을 축소하려 했던것에 앙심을 품고 보복감사를 하고 있다고 불평하더라』고 전하면서 『당신이 삼성그룹을 쑥밭으로 만들겠다고 했다는데 사실인가』라고 다그친뒤 며칠후 감사중단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1차적인 사정기능을 담당해야할 감사원이 더이상 재벌이나 권력의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감사원의 기능을 강화,스스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취해야할 감사원이 재벌과 유착됐거나 정경유착을 비호 또는 방조했다는 의혹을 불식시키지 않는 한 앞으로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대한 공신력과 6공정부의 도덕성에 엄청난 흠결을 남길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씨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이씨의 구속적부심 청구를 『이유없다』고 기각함으로써 앞으로 이씨 구속에 대한 논란이 재판과정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구속적부심을 심리한 재판부는 『이씨의 행위가 단순히 우발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니고 사전계획된 비밀누설 행위로 판단될 뿐아니라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만큼 계속 구속할 필요가 있다』고 기각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재야법조계에서는 『국민들에게 재벌소유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실태를 알린 것은 객관적ㆍ일반적 입장에서 볼 때 공무상비밀누설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검찰이 23개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이 1.2%에 불과하다는 은행감독원의 통계는 믿으면서 감사원 감사결과는 무시하고 이같은 사실이 보도됨으로써 기업의 피해까지를 공무상비밀에 속한다고 보고 구속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또 설령 비밀로 분류돼 있지 않은 자료를 유출한 행위를 비난한다 하더라도 자체징계로 충분한 사안을 구속까지 한 것은 적절한 검찰권 행사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이씨가 재판과정에서 재벌들의 비리나 감사원의 숨은 뒷얘기를 계속 털어놓을 경우 이씨 사건의 파문은 재계뿐만 아니라 정계에까지 계속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평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모처럼 터져나온 재벌들의 비리와 정부부처 예산의 선거자금유용등의 정치성호재를 이달말 열릴 예정인 임시국회에서 계속 추궁할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 이사건의 파장은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이창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