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사과공방」 일서 막판 양보/서울/“84년보다 진전” 당국 밝은 표정/여론 반응에 신경… 방일 마지막 점검 박차정부는 23일 하오 일본으로부터 일왕사과문안을 전달받고 우리의 요구가 완벽히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가해ㆍ피해자 명시등 주요골간이 대부분 포함되는등 일본측이 상당한 성의를 보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에 최대결림돌로 작용했던 일왕사과문제가 일단 원만히 해결된 것으로 파악하고 방일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한 마지막 점검작업에 들어갔다.
일본은 당초 자국내여론과 헌법상의 제약등을 이유로 일왕의 사과수준을 84년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의 수준으로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왔으며 지난주말까지도 이러한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침을 고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은 이같은 사실을 사전에 파악한 우리측이 강한반발을 보이자 당황,일요일인 지난 20일 부터 연일 총리 주재로 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해 온 끝에 보다 진전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노대통령 방일을 4일 앞둔 시점에서의 한일 양국간 힘겨운 줄다리기는 일본의 밀사파한,사과문안통보 시한연기등으로 긴박하게 가시화됐었다.
결국 일본은 21세기 아ㆍ태지역의 주역으로서 한일 양국이 보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과거사 청산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뒤늦게나마 인정한 셈이다. 이는 또한 과거의 난쁜 기억에 매달려 언제까지나 현실적인 양국관계를 도외시할 수 만은 없는 우리로서도 다행스런 일로 평가된다.
그러나 24일 일본궁성만찬석상에서의 일왕사과 한마디로 양국간의 과거사가 말끔히 청산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일왕사과 문제에서 나타난 양국국민의 감정,특히 일본측의 완강한 태도는 실질적인 과거청산이 아직 요원하다는 사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왕사과는 분명히 앞으로의 양국관계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이지만 동시에 한일 양국의 감정 정리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교훈도 일깨워주었다.
○…일왕사과문안 내용이 대체로 알려진 23일 상오 외무부관계자들은 전날보다 다소 밝은 표정을 지으며 느긋한 모습을 보여 사과문제가 상당부분 진전됐음을 암시.
한 고위당국자는 사과주체를 표현하는 외에 크게 진전된 것이 없을 것이라는 일본 언론보도의 진위여부를 묻자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측의 요구가 상당히 받아들여진 것으로 안다』고 자신있게 대답.
○…외무부측은 일왕사과 수준이 어느 정도 우리측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상향조정된 사실에 안도해 하면서도 강도높은 사과를 요구하는 일반국민의 여론에는 못미칠 것을 우려,24일 일왕사과내용이 어떻게 평가될지에 은근히 관심을 집중.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외교에는 항상 상대방이 있는 법』이라며 『지나치게 상대를 궁지로 몰면 협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 일본의 국내여건을 감안,적절한 수준에서 일왕사과문제를 마무리지으려는 정부의 입장을 반영.
○…야나기ㆍ겐이치(유건일) 주한일본대사는 이날 하오 2시35분 나나오ㆍ기요히코(칠미청언)공사와 함께 외무부로 최호중 외무장관을 방문,일왕사과문안을 전달하고 일본측의 입장을 설명.
최장관은 야나기 대사로부터 사과문안을 전달받은 뒤 이 문제에 대한 한국내 분위기를 다시한번 강조하는 등 40분동안 요담.
최장관은 하오 3시15분께 요담이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일왕사과문안에 대해 『일본측에서 강력히 요청해와 내용을 미리 밝힐 수는 없다』면서 『다만 일본으로서도 우리 대통령의 방일을 정중히 맞이하겠다는 자세로 신중하게 많은 고심을 해서 협의한 결과라고 일단 평가 한다』고 설명.
최장관은 이어 『84년보다는 진전된 것이며 24일 공표되면 정당한 평가는 국민들이 내릴 것』이라고 밝힌뒤 노대통령에게의 보고를 위해 청와대로 직행.
한편 야나기일본대사는 이날 상오 11시께 외무부측에 하오 2시 사과문안을 전달하겠다고 통보했으나 본국과 연락등의 사정으로 예정보다 35분 늦게 도착.
○…이번 일왕사과를 둘러싼 한일간 협의는 일본측이 「천황」의 발언은 협상대상이 될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을 보여 공식적으로는 우리측의 요구사항 표명과 일본의 문안 통보만으로 완료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그러나 우리측은 지난 21일 모종의 경로를 통해 일본측이 거의 최종적으로 마련해 놓은 사과문안을 입수,기대에 크게 못미친다는 판단아래 일본측에 강력히 반발함으로써 양보를 얻어내는 등 실질적인 협상과정을 거쳤다는 후문.【정광철기자】
◎동경/언론 “양국 미래지향할 때” 환영/일부 극우파서 “국왕제사수”전단 살포도
노태우대통령을 맞는 일본의 표정은 한마디로 환영과 당혹감이 교차되는 가운데 거리는 평상과 전혀 다름 없는 분위기이다.
간간이 극좌단체가 확성기 달린 차량으로 「국왕제사수」를 부르짖으면서 「노대통령 방일반대」 전단도 뿌리고 극좌게릴라단체의 테러위협도 있지만 이는 일본에서는 일상적인 일로 치부될 수 있다.
일본의 이같은 표정은 노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그동안 양국간에 삐걱거림이 많았다는 반증인데,특히 일왕의 사죄발언문제를 놓고 막바지에 이르러서도 진통이 거듭되고 있어 일본정부는 큰 곤혹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은 지난 84년9월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과 여러모로 비견되는 점이 많다. 그것은 전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첫 방일이라는 점에서,또 당시의 국제정세가 이데올로기대립의 절정기로 일본의 나카소네(중증근)총리,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을 묶는 소위 초강경 보수의 일원이었다는 점에서 일본으로서는 환영일색이었다.
이때는 또 나카소네가 경제대국 일본의 위신을 내걸고 국제무대에서 종횡으로 활약하던 시기여서 나카소네의 원맨쇼에 일본국민이 도취되던 무렵이기도 했다. 따라서 역대 한일관계사상 가장 친밀했던 「전나카소네」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일본정부의 환대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때는 일왕의 사죄발언내용자체가 크게 쟁점이 되지 않아 정치적 방문의 성격이 짙었었다.
그러나 이번 노대통령의 방일은 6년전과 전혀 사정이 다르다. 우선 재일동포3세의 법적지위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데다,「과거의 청산」이라는 점에서 일왕의 사죄발언내용을 놓고 양국간의 감정적 차원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하나는 노대통령의 카운터파트인 가이후(해부준수)총리가 일본정계의 실세가 아닌,자민당내 최약체파벌 출신이어서 일본측의 정치적 결단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의 성격을 실무적인 차원에서 규정한다면 어느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는지 의문시되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 방일이 갖고 있는 양국간의 이같은 복잡한 관계를 떠나 일본정부는 물론 정계ㆍ경제계ㆍ언론계ㆍ문화계등 각계각층에서는 노대통령의 방일을 적극환영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방일을 하루앞둔 23일 일본의 신문은 일제히 사설로 노대통령방일을 환영하고 나섰다. 이들 언론들의 논지가 하나같이 『양국간의 관계가 과거ㆍ현재보다는 미래지향으로 나아가야한다』고 강조하고 있어 「과거의 역사」에 대해 고심하는 흔적이 엿보인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이제 양국관계는 과거를 정리,미래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지적하고 『언제까지나 과거에 집착,연연해서는 안된다』고 한국국민들의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이 신문은 또 『가이후총리가 일본과 일본국민을 대표,사죄를 하고 국왕이 헌법상 제한된 범위내에서 또다시 이를 전달할 예정으로 있다』고 전제,과거가 더이상 양국간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 아사히(조일)신문도 「미래를 향한 한일관계」라는 사설에서 『이번 노대통령의 방일은 두나라의 미래를 향한 출발점으로서 기대된다』고 밝히고 특히 일본의 좌파 정당인 사회당과 공산당마저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방향을 바꾼 것은 주목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신문은 『이들 정당의 방향전환은 동서간의 냉전이 종식됐다는 측면과 세계의 급격한 변화도 그 일인』이라고 분석,더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신문은 『지금까지의 한일관계는 「반공」으로 연결돼 왔으나 미래를 여는 시점에서 이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조로하는 공통성을 내세워야 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일본정부도 양국간의 관계가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대처하고 있으나 초점이 되는 의제가운데 일왕의 사죄발언을 비롯,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문들이 많아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동경=정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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