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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의 방일(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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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의 방일(사설)

입력
199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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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안팎의 사정이 참으로 어려울 때에 노태우대통령이 무거운 짐을 지고 일본방문길에 오른다. 국가원수의 이웃우방국 나들이때는 흔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장래의 공존공영방안에 대해 논의,모색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번 방문이 이런 문제에만 머무를 수 없게 된 양국관계가 그야말로 유감이라면 유감이다.그간 양국간에 첨예하게 대립상황을 보여온 「사죄」 문제가 이번 방문을 통해 매듭지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측으로서는 일본이 지난날 한국에 대해 저지른 죄악의 청산문제가 너무나 중요했기에 이의 선결을 기대했지만 대통령등정 하루전까지도 이 문제에 관해 이렇다할 매듭을 짓지 못한 것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이점 방일중의 노대통령을 통해 우리민족의 분노와 양심이 결연하게 표명될 것으로 기대하며 일본측은 「미래를 향한 새출발」이라는 역사적 사명의식에서 과거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로 해묵은 문제를 청산하기를 다시한번 촉구한다.

사실 지난 2달동안 과거 죄과에 대한 사과방법을 두고 일본이 보인 태도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일본은 아키히토 일왕이 지난 84년 전대통령방일때 히로히토일왕이 한 것 처럼 주ㆍ객체가 없이 「불행했던 일에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할 것이니,약간 구체적으로 하느니,아예 총리를 통해하느니 했던 것은 어떠하든 사과를 기피하기 위한 책략으로 비쳐져 우리국민을 더욱 분노케했던 것이다. 개인대 개인은 물론 국가간에도 사과에 있어서는 「어떻게 잘못한 일에 대해 누가 누구에게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그럼에도 일본이 그들의 국가원수인 국왕을 개입시키지 않으려하고 나아가 가급적 사과아닌 사과로 희석시키려는 술수와 책략은 반도덕적인 파렴치한 행위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어차피 마음에도 없는 저들의 사과를 더이상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여론마저 일었던 것이다. 참으로 진심이 아닌 사과는 일본에 대한 한국민의 한과 원을 두고두고 가슴속 깊이 간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점에서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은 그 책무가 막중하다. 그들이 구차한 방식을 고집할 경우 일왕주최 만찬답사이든 국회연설을 통해서이든 과거 일제의 죄악상을 적나라하게 열거한 뒤 일본의 책임을 다시한번 일깨워 주어야 할 것이다. 일본측이 얼버무리는 「사죄」로 과거청산을 또 미루는 경우 한일양국관계의 진전을 위해 있어야 할 아키히토일왕의 방한초청이 어려울 것임을 우리는 이미 밝힌 바 있다.

우리는 노대통령의 방일이 과거청산외에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소련과 동구공산권의 벽이 무너지는 탈이데올로기­신데탕트시대에 동북아의 주역인 한ㆍ일양국이 장차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방안은 물론 특히 장차 미군철수후의 대책을 모색하는 것은 사뭇 절실한 일이다.

이와함께 동포 1ㆍ2세의 법적지위개선과 권익향상,즉 지문날인등 4대악제도철폐 취업차별철폐 지방자치단체 참정권부여등과 북한의 개방유도문제 심각한 무역역조시정과 첨단과학기술의 이전문제등은 노대통령이 관철시켜야 할 숙제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런 실질적 현안들이 과거사과문제에 가리어져 거의 방일의 이슈권 밖으로 밀려났던것은 사과라는 상징적문제가 얼마나 한국인에게 중요한 문제인가를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의 움직임이나 양국이 처한 상황으로 볼때 두나라가 지금의 교착에서 탈피하고 미래를 향해 협력해 나가야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떠나는 노대통령과 그를 맞아들이는 일본측이 이러한 새시대로의 매듭을 풀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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