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대 실제로 있었던 웃기는 이야기인가. 일본의 국회의원 시찰단이 외유를 나가 파리에 도착했다. 안내를 맡은 대사관직원이 『내일은 노트르댐을 시찰하겠습니다』라고 일정을 알린다. 그때 한야당의원이 불쑥 내뱉은 말이 희한하다. 『뭐라구. 댐은 내선거구에서 실컷 보고도 남았는데 프랑스까지 와서 또 댐구경을 한단 말인가』.그 선량은 노트르댐사원을 발전소댐쯤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요즘 일본정계에 그렇게 딱한 야당의원은 없는 것 같다. 하물며 정치지망생들이 넘쳐흐르는 한국땅에 존재해서야 될 말인가.
업자로부터 2천만원의 돈을 입원비조로 받았다고 항변한 초선야당의원이 특정범죄가중 처벌법위반(수뢰) 협의로 구속되었다. 유무죄는 앞으로 법원이 가리겠으나 우리나라 야당의원의 구속사례는 적지 않았다.
3공과 유신시대이후 야당이 「엿과 매」로 비유되는 탄압과 회유를 번갈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지금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된 김영삼씨도 한때는 의원직을 제명당하고 가택연금생활을 겪었다. 일본에서 강제납치되는등 죽을 고비를 넘기고 「5ㆍ18광주항쟁」이후 사형선고까지 받은 김대중 평민당총재같은 경우도 있다. 그런가하면 「10ㆍ26박전대통령암살사건」이후 정계를 떠나 칩거한뒤 명색이 야당이라는 공화당총재로 취임한 김종필씨는 「보수대연합」의 연출가 역할을 맡기도 했다.
오늘날 그 가운데서 두김씨는 각각 거대여당의 2인자,3인자로 앉아있고 한 김씨는 야권통합을 위해 2선으로 후퇴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우리정치 풍토아래서 전통적으로 야당생활을 하려면 엄청난 핍박과 고난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때는 자기사생활,가족을 희생할 각오까지 가져야했다.
그래서 야당가에서는 자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잡초처럼 꿋꿋하게 살아가는 정치인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유능한 정부고관,저명한 대학교수 등 엘리트는 으레 여당에 몸을 담았고 야당입당을 기피한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요즘 여당인 민자당과 야당인 평민당의 주요당직자 면모만 살펴봐도 쉽게 알수 있는 일이다.
여당에는 육군대장출신,전직장관,전문관료 등이 기라성처럼 즐비하나 야당에는 그런 경력의 소유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야당이 집권할 날에 대비,영국처럼 「섀도캐비닛」을 구성하려해도 아마 인물난에 봉착할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우리국민들은 독재성향의 여당,거대여당이 출현하면 반드시 야당세력을 부추겨 이를 효과적으로 견제시켜 왔다. 지난 「2ㆍ27총선」때 이민우씨가 이끈 신민당이 대약진,마침내 어용 야당이라던 민한당을 흡수,통합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13대 대통령선거에서 야권의 분열때문에 민정당이 승리하자 그다음 4ㆍ26총선때는 평민ㆍ민주ㆍ공화의 3야당이 과반수 의석을 갖게 되지 않았던가.
개헌선을 상회하는 거대여당 민자당이 발족하자 야권통합론이 대두한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4월3일 진천ㆍ음성과 대구서갑구의 보궐선거이후 야당통합교섭이 재개되어 벌써 40여일이 지났다. 평민당과 민주당의 현재의석수만 따진다면 70대 8이지만 보선결과 민주당의 선전과 평민당의 지역성때문에 1대1의 통합이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다.
양측은 지난 8일 당대당 통합,집단지도체제,당대표의 경선등 3개통합원칙에 합의했건만 구체적인 지분문제에서 벽에 부딪쳤다. 아닌게 아니라 지분문제는 당대당 통합원칙의 논리적 근거인 동시에 당대표의 「얼굴」을 가름하는 핵심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양당의 통합파의원들은 며칠전 「선대표경선,후조직책선정」을 골자로한 절충안을 들고나와 진통은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고심에 찬 야당통합의 관건이 한마디로 김대중총재의 2선후퇴여부에 있음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김씨가 총재로 남는한 평민당에로의 흡수통합이라는 민주당지도부와 김총재의 후퇴는 절대불가라는 평민당지도부의 생각은 문자그대로 평행선을 걷고 있는 셈이다.
하나굳이 객관적으로 논평한다면 김총재의 후퇴여부는 다음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내릴 판단의 대상이 아닌가 싶다. 『누구는 절대로 안된다』는 발상은 또다른,권위주의적인 것이어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한때 야당총재로 있던 두김씨는 여당으로 건너갔음에도 물러나라는 압력이 없는데 반해 유독 야당총재로 남아있는 한김씨만은 통합의 걸림돌이기 때문에 후퇴하라는 요구는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가.
본디 정계의 무원칙한 이합집산은 정당의 이념,정책,기반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법이다. 하지만 평민당과 민주당의 이념 정책에 큰 차이를 발견할 수가 없다. 사정이 그렇거늘 결국 양당의 지지기반이 문제로 남을 뿐이다. 서울에서 야권이 분열된채 다음 총선을 치를 사태를 생각해보라.
여당의 독주를 견제못하는 야당은 존재가치를 잃게 마련이다. 두 야당은 우선 통합해서,효과적으로 민주화의 창업과 수성을 다짐할 때가 아닌가 싶다.
모든 여론에는 양면성이 있다. 김총재가 일단 물러서야 한다는 여론이 있으나 어느누구는 안된다는 생각에 얼핏 찬성못하는 여론도 있다. 언론을 아전인수식으로 원용해서 유리한 여론은 삼키고 불리한 여론은 내뱉는 발상은 독선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필요에 따라,편의에 따라 명분을 잃는 정치스타일을 지양못할 만큼 우리사회가 편협하게 된 원인이 궁금하다.
물론 김총재 자신에게도 주어진 선택지가 몇가지 있을 것이다. 왜 적지않은 사람들이 그의 2선후퇴를 바라는가,한번쯤 성찰해 볼 필요는 있을지 모른다. 중국의 등소평같은 실력자가 되는 길도 남아있는 것이다.【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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