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사과」헌법상 지위 내세워 “펄쩍”/TV선 “반대”목소리만 장황하게 늘어놔/일 속마음 확인… 우리측 결단내려야일본은 지난날 한국에 대한 죄과를 진심으로 참회,반성하고 있는가. 국교정상화이후 한국을 보는 시각과 자세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또한 일본은 우리의 진정한 이웃인가. 나아가 노태우대통령의 이번 방일은 과연 타당하고 적절한가.
일본의 대한사과를 둘러싼 팽팽한 논란속에 필자는 1주일동안 일본의 정계실력자 외무장관 전외무차관 외무성고위관리 학자 경제전문가 언론계간부 시민 등을 두루 접촉하면서 앞의 의문들을 확인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결론부터 말해서 종합적으로 느끼고 확인한 것은 한결같이 부정적이라는 점이었다.
일본인들의 이중성은 이미 국제적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대한사과문제에서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자민당 최대파벌의 보스인 다케시타ㆍ노보루(죽하 등)전총리,나카야마ㆍ타로(중산태랑) 외무장관,스노베ㆍ료조(수지부량삼) 전외무차관 등 만나는 사람마다 지난날 일본이 한국에 대해 저지른 일에 『깊이 반성한다』 『책임을 통감한다』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러나 사과방법,즉 한국측에서 기대하는 아키히토 국왕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사과방식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고개를 젓는다.
바로 이점이 일본의 속셈과 본뜻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진짜속마음은 별로 참회나 반성할 일도 없고 더구나 사과할 생각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들이 1910년 무력으로 한국을 강점,가혹한 식민통치를 통해 온갖 약탈ㆍ탄압과 징병징용등으로 수백만명의 인명을 실상한 엄청난 역사적 죄악에 대해 조금이라도 뉘우치고 사죄할 생각이있다면 사과하는데 구차스런 형식과 조건을 붙일수가 없는 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식민통치와 약탈,전쟁동원 등 이 역대일왕의 승인하에 이뤄졌다는 것은 많은 기록에서 확인된바 있다. 현 아키히토왕은 전전상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일본의 국기원수로서 또 역대선왕의 죄과를 사과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이점을 강조할 때마다 일본측 인사들은 펄쩍 뛰었다. 그들의 반대논리는 뻔하다.
왕은 국가적 결정에 아무런 책임이 없을 뿐더러 헌법 7조에 국사행위에 간여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만큼 가이후(해부)총리가 정부를 대표해서 사과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다.
한 언론계간부는 『천황은 아무런 힘도 없는 로봇에 불과한데 왜 한국민들은 그같은 로봇한테 꼭 사과를 들으려 하느냐』고 말하는가 하면,외무성의 한 고위관리는 『과거 군국주의때 천황을 끌어들여서 문제가 생겼던만큼 이번 대한사과에는 새 천황을 개입안시켜야 한일간에 문제가 조용해진다』며 일왕보호론을 펼치기까지 했다.
일본측 인사들은 특히 지난 84년 전두환전대통령 방일때 히로히토왕이 「불행한 과거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한 사과는 『일왕으로서는 최대의 사과였다』면서 『한국측이 새삼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은근히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당시 일왕의 사과는 누가 누구한데 저지른 일인지,또 어떤일을 사과하는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명한 것은 물론,주어가 없는 문장이 아닌가고 지적하자 그런대로 수긍하는 태도였다.
따라서 경제대국인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도덕성을 겹영전하기 위해서도 일왕이 구체적으로 사죄를 표명하는 것이 한국민이 입었던 쓰라린 상처와 고통을 완전치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청산하고 미래를 향해 손잡고과 나아갈 수 있지 않은가고 물으면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왕을 내세우는데는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주 노대통령이 주한일본특파원들과 회견,『역사의 장애가 없어야 동반자가 될 수 있으므로 일왕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한말이 일본매스컴에 크게 보도되자 반성과는 거리가 먼 일본정부와 각계,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날 저녁 일본의 각 TV는 일왕사과요구에 대한 각계 의견을 듣는 특집프로를 마련했다.
서두에서 공정하게 찬성ㆍ반대ㆍ중도론을 골고루 수용,방영한다고 했으나 정작 방영한 것은 근 90%가 『무엇때문에 사과하나』 『한국대통령이 방일때마다 우리천황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왜 수십년 지난 과거얘기를 들먹이는가』 『천황이 절대로 사과해서는 안된다』는 반론으로 일관했다.
이같은 반대론은 자민당의 핵심수뇌의 『엎드려 조아릴 필요가 없다』는 망언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결국 일본정부와 자민당은 한국측의 강경한 자세를 감안,「일왕의 사과는 불가」에서 「사과하되 84년 전 전대통령방일때 수준을 유지한다」 「가해ㆍ피해자를 완곡하게 밝힌다」 「일왕은 84년 수준으로 하고 가이후총리가 구체적으로 사과한다」는 등의 안을 흘려 반응을 떠보고 있지만 어쨌든 일왕의 사과발언도 84년선을 지킨다는 것이 거의 정론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은 일왕사과에 역점을 두고 있는 한국정부와 국민의 관심을 경제협력,첨단기술 제공,재일동포지위향상,피폭자기금설치,사할린교포 송환쪽으로 돌리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어쨌든 한국측으로서는 이제 결단을 내릴때가 왔다. 언어의 세공과 변형을 통합 형식적인 진사에 만족할 것인가,아니면 서독형의 분명하고 구체적인 사과여야만 수락할 것인가,또는 일왕의 사과는 84년 수준이 되더라도 구체적인 사과를 담은 일본정부의 공식문서를 요구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것 같다.<동경에서 이성춘논설위원>동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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