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앞두고 통합협상서 공방전통일을 앞둔 독일에서는 요즘 45년전 동서로 갈라진 세계적인 광학기업 카를 차이스사의 「정통성」 논쟁이 한창이다.
1백4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회사가 「분단」 된것은 2차대전 종전직후인 45년 여름.
당시 미국당국은 소련점령지역인 동독의 예나에 있던 이 회사를 서독으로 이전시켰다.
세계최고 수준의 광학기술이 소련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이 회사는 예나에서 2백마일이나 떨어진 서독의 오베르코헨으로 옮겨지게 되었고,다시 세계적인 기업으로 복귀됐다.
하지만 예나에 남은 종업원들은 카를차이스사란 이름으로 옛 공장을 다시 일으켰다.
똑같은 이름을 가진 동서독의 두 회사는 당연히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만 했다. 이들이 생산하는 품목은 의학용 및 탐사용기구와 쌍안경 현미경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 두 회사가 제품의 질이상으로 신경을 쓴 부분은 누가 「차이스」란 이름을 사용하느냐 였다.
몇년동안 법정투쟁을 벌인끝에 두 회사는 기막힌 타협안에 합의했다.
서독측 회사는 서구에 판매할때는 「차이스」란 이름을 사용하고 동구쪽에는 「옵톤」이란 상표를 쓰기로 했으며,동독측 회사는 반대로 동구에 판매할때에만 「차이스」를,그 이외에는 「예놉틱」이라는 상표를 사용키로 했다.
그렇게 40년을 지내다 최근 통독분위기 속에서 양측대표들은 양사의 통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통합의 필요성은 간단하다. 통합으로 니콘이나 캐논 미놀타와 같은 일본회사를 누르고 다시 세계 제일의 위치를 차지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서독측 회사의 매출액은 13억마르크(7억6천7백만달러)였고 동독회사의 이익은 43억 동독마르크였다.
그러나 쉬울것 같던 통합작업에 어느쪽이 통합의 주체가 되느냐는 정통성문제로 차질이 생겼다.
과연 어느쪽이 「진짜」냐는 것이다.
2차대전전 차이사는 카를차이스재단에 의해 운영됐다. 이 재단은 차이스사 창립자의 기업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됐었다.
또 이 회사는 이미 1백년전부터 휴일수당을 지급했으며 각종 복지ㆍ연금정책과 8시간 노동제 등을 실시했었다.
서독측 회사는 그러나 지난 48년 동독이 공산화된 이후 이 재단이 없어졌으며 재단설립 취지에 따라 운영되던 예나 공장도 「국민기업」으로 국유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이 회사는 서독 이전후 새로운 재단을 세워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서독은 자신들이 진정한 후계자라는 것이다.
동독측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첫째 원래 재단헌장에 차이스사의 본거지는 언제나 예나임이 명시돼 있으며,둘째 원래 재단이 아직도 예나에 존재해 비록 회사를 직접 관장하지는 않지만 대학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동독회사측은 「적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정부측에 재단의 반환을 요청해 놓고 있다.
서독 회사의 호르스트ㆍ스코루데크 회장은 동독측의 태도가 못마땅한 듯 최근 종업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서독 회사를 중심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오는 7월 경제통합을 앞두고 이 분단된 세계적 기업이 어떻게 「통일」 되느냐에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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