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북한의 새로운 반응이 드러났다. 이러한 반응은 예정을 앞당겨 지난 4월 실시된 소위 최고 인민회의선거 뒤에 어떤 「노선변경」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적 예상도 있었던 만큼 우리의 깊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북한은 16일 평양방송을 통해 금강산개발을 비롯한 우리측 현대그룹과의 경제협력계획을 『이미 무효가 됐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현대와의 경제협력을 거부한 직접적인 구실은 현대가 보낸 15대의 승용차와 중장비에 『무상공여라는 듣기조차 흉측스러운 말』을 썼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연례적인 팀스피리트훈련을 이유로 모든 남북대화를 중단하면서도 금강산개발등 경제협력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왔다. 그래서 현대의 정주영회장은 오는 7월 다시 평양을 방문해서 세부사항을 북측과 협의할 예정이었다.
그만큼 갑자기 협정을 깨겠다는 북측의 일방적인 발표는 우리에게는 「뜻밖」이라고 할만한 움직임이다.
더구나 최근 북측은 북경회담에서 미국측에 6ㆍ25전쟁중 실종된 미군인의 유해를 송환하는 문제에 합의하고,워싱턴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학자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과 평양사이에 미소가 오가게 됐다는 기대를 갖게하는 움직임이었다.
결국 북한은 한쪽 얼굴에는 미소를,또 한쪽 얼굴에는 예상밖의 강경반응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기술적으로 볼때 현대가 보낸 7대의 중장비가 일본언론에 의해 「무상공여」로 보도된 것이 북측의 자존심을 건드릴 가능성은 부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도된 경위가 어떻든 앞으로 평양을 상대로 하는 대화나 거래에 하나의 경험이 될 것이다.
만약 「선물」이라 하지 않고 「무상공여」라 한 표현이 남북경제협력을 거부하게 된 진짜 이유라면 분위기를 되돌리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안팎의 사정으로 볼때 북으로서도 무작정 경제협력의 문을 닫아 놓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도 북측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대결상태의 평화로운 전환이라는 긴 안목으로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동유럽공산권의 와해라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비추어 볼 때 평양측의 어려움은 결코 낙관적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다. 북측은 미국측에 미소를 보냄으로써 동유럽에서 입은 엄청난 상처를 보상하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럴수록 평양측은 안으로 통제를 강화하고,따라서 우리측과의 관계개선을 강경하게 거부할 공산이 크다. 현대와의 경제협력을 파기한 진의도 이런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측과의 대화는 성급하게 기대할 일이 못되는 것처럼,성급하게 실망을 일도 아니다. 한반도 주변상황으로 봐서 남북대화에 적으나마 진전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온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북측이 남북경제협력의 예비단계라고 할수 있는 금강산개발계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그런 뜻에서 우리에게 적지않은 실망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좀더 신중하게,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앞으로의 움직임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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