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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피해자」의 청산(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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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피해자」의 청산(사설)

입력
1990.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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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대통령의 정상외교 가운데 이번 방일처럼 부담스런 여행은 없을 것 같다. 대변혁의 세계에서 이웃과의 관계증진이란 「미래지향적 당위」가 걸려 있고 이것이 어느 의미에선 해방후 최악이라고도 할 양국민간의 감정대립 상황에서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한국정부가 지난 8일 노대통령의 방일을 공식발표하기 전만 해도 일본측은 일왕 아키히토(명인)의 분명한 사과가 있을 것이며 재일동포1ㆍ2세에게도 3세와 같은 법적 보장의 확대실시에 노력할 것이라는 보도를 흘려 보냈다.

그러던 일본이 방일이 공식화된 후 열린 집권자민당 4역회의에서 『노대통령의 방일시에 아키히토(명인) 국왕이 한국국민에게 할 발언은 84년 히로히토(유인) 국왕이 한 유감이상의 수준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이같은 당론을 정부에 전달했다는 보도다. 여기에 자민당의 핵심간부가 이 문제와 관련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없다』는등 반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오만한 태도를 역력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원래 사죄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며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야 진정한 사과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입에다 담을 수 없는 일제 36년의 만행에 대한 응어리를 풀기 위해서는 한일간에는 화해의 의식이 꼭 필요하며 그 전제가 일왕의 진정한 사죄라고 우리는 믿어왔다. 그러나 표변되어가는 일본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방일이 강행돼야 하는가에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일본측은 일왕의 사죄를 거부하는 이유로서 전후 평화헌법상으로는 일왕의 존재가 국민통합의 상징이기 때문에 정치ㆍ외교문제에 일왕을 끼어들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히로히토(유인)가 미국ㆍ영국ㆍ중국을 순방하면서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로서 정상외교를 펼쳐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로서는 일왕이 우리 대통령이 방문하고 방한초청을 해야 할 상대이며 「유감」을 표명할 수 있다면 그이상은 왜 불가능한지에 대해 선뜻 납득할 수 없다. 모두가 일본측의 무성의와 회피와 궤변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

방일을 눈앞에 둔 노대통령 자신도 두 나라의 지난날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분명한 말로 규정했다. 더구나 그의 이번 방일은 새로운 국제정치 상황하에서 이웃과의 관계증진이라는 미래적 과제를 위해 난국이라는 국내적 부담과 반대여론을 감내하며 강행되는 정치적 부담이 큰 행사이다. 우리는 이 난을 통해 이번 방일이 두 나라가 과거청산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강조하면서 더이상 과거문제에 매달려 있는 것이 양국의 이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했었다.

이제 두 나라의 문제는 말씨름이나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외교실체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땅에 머리를 대느니,안대느니 하는 망언을 거두고 우리 대통령이 밝힌 「가해자­피해자」의 입장에서 먼저 일본측의 성의있는 사죄가 나와야 한다. 만약 이 문제에 관한 우리 국민이 만족할 만한 결과없이 방일이 있을 경우 노대통령의 국내정치적 부담도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며 또한 일왕의 방한도 결코 순조롭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일본은 편견과 왜곡에서 벗어나 역사와 국제관계의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향한 의무를 이행할 때가 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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