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수준이면 방일 무의미”간주/「일국민 뉘우침 상징」 내세워 설득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10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일왕의 대한 사과불가입장을 보이는데 대해 정부는 물론,일반여론은 놀라움과 실망감을 함께 표시하고 있다.
특히 노대통령의 방일과 관련된 한일간의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일왕의 사과문제를 제기했던 정부로서는 이번 방일을 계기로 과거사청산과 21세기의 성숙한 동반자관계를 이룩할 수 있도록 성의를 다하겠다던 일 정부의 태도돌변에 상당한 당혹감을 느끼는 듯하다.
이는 재일동포 3세문제등 몇 차례의 고비끝에 이루어지는 노대통령의 방일이 지난 84년 전두환전대통령 방일때의 수준에도 못미치는 대한사과를 얻어낼 경우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감수해야 하기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따라서 일왕의 명확한 사과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노대통령 방일의 의미는 반감된다는 판단아래 외교력을 집중,일본측을 설득해나갈 방침이다.
우리측은 기본적으로 일본이 언론이나 자민당등의 입을 통해 일왕의 사과에 반대하는 태도를 표명하고 나서는 것은 일본이 아직 한국에 대해 진정한 사과의 뜻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보고있다.
따라서 일본이 일왕 사과 불가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헌법상의 제한등은 사과를 피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측은 현재 자신들의 헌법에 규정된 「천황은 헌법이 정하는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행하며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가지지 아니한다」는 조항에 근거해 일왕이 대한사과를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난 84년 당시 히로히토 일왕이 한국에 대해 「유감」이라는 표현으로 양국간 과거역사에 관해 언급한 만큼 일왕이 국사에 간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과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아키히토 일왕의 사과수준이 과거 히로히토 일왕의 발언수준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사과발언의 정도여하에 따라 정치적,또는 비정치적 발언이 구분된다는 발상이므로 논리적인 모순을 지니게 된다.
일본헌법은 일왕의 국사에 관한 권한을 언급하기에 앞서 3조에서 「천황의 국사에 관한 모든 행위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하며 내각이 그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일왕의 사과는 일본내각이 명확한 발언을 하도록 조언하면 되는것이며 수상이 스스로 사과발언을 하겠다고 나서는 마당에 일왕에게 그러한 조언을 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밖에 일본이 주장하듯 일왕은 국가의 「상징」인 만큼 일왕의 명확한 발언이야말로 일본국민의 한국민에 대한 뉘우침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관련,최호중외무장관은 지난 10일 일본 주요일간지 논설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일본 식민치하에 있을때 매일아침 궁성예배와 황국신민맹세를 강요받았던 사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며 일왕의 명백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최장관의 이러한 지적이 일본언론에 소개되자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크게 반발하고나서 일본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의 일단을 여실히 드러냈다.
일본내에는 84년 당시 히로히토 일왕의 「유감」표명으로 한일간 사과문제는 일단락됐으며 한국의 정권이 바뀔때 마다 일왕이 사과를 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주체도 분명치 않은 「유감」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은 양국간 과거사를 일단락지을 수준의 사과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민의 일반적인 감정이다.
이러한 여론의 토대위에서 정부는 노대통령 방일때 반드시 일왕이 사과를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그것도 히로히토 당시 일왕보다 분명하고 강도높은 표현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위에 지난 72년 중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할때 공동 코뮈니케에서 밝힌 『일본측은 과거에 있어서 일본국이 전쟁을 통하여 중국국민에게 중대한 손해를 가한데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고 깊게 반성한다』는 수준의 일본 정부,또는 국회의 공식입장이 있을때 비로소 한일양국간의 과거사는 청산된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측의 이같은 성의있는 태도가 전제될때 일왕의 방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한국민도 따뜻하게 일왕을 맞이할 여유있는 마음을 갖게되는 것이다.【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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