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입력
1990.05.10 00:00
0 0

일제가 저지른 죄악 중에서 가장 큰 잔악행위는 「데이신타이」 (정신대)란 이름으로 한국여성들을 종군위안부로 끌고간 것이다. 소위 그들이 말하는 황군에는 태평양전쟁 때만해도 약20만명의 종군위안부들이 있었다. 그중 80∼90%는 한국에서 강제로 끌고온 「도라지꽃」이었다. ◆이들 위안부는 군과 결탁한 매춘업자가 공급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확대로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되자 일군은 마침내 강제로 위안부를 모집하기에 이르렀다. 독소개전에 따라 1941년 7월 24만명의 관동군을 75만으로 늘리자 자연 위안부의 증원이 요청됐다. 관동군 보급담당 참모가 특별군용기로 조선총독을 방문,2만명의 한인위안부를 요구 했다가 결국 1만명으로 조정했다. ◆이것이 한국에서 그들의 말로 「여자공출」이 시작된 첫케이스다. 정신대의 자격은 16세에서 40세의 미혼녀로 됐지만 막판에는 12살까지의 어린소녀까지 끌고갔다. 이들은 대체로 만주와 남양군도의 최전선에서 위안부 노릇을 했다. 위안부의 수요는 「니쿠이치」(29.1)라고 해서 일본군 29명에 정신대 1명의 비율로 충당했다. 전쟁 막판에는 더욱 생지옥 같은 시달림을 받았다. ◆정신대에 관한 기록은 현재 한건도 없다. 일제는 이 엄청난 비인간적 만행을 감추기 위해 근거 서류를 불살랐고,살아남은 정신대원을 밀림에서 집단으로 죽였다. 요행이 살아남은 정신대원은 1∼2만 쯤으로 보지만 차마 입밖에 낼수없는 과거에 시달려 폐인이 됐거나 숨어살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배옥수할머니와 노수복,배봉기할머니가 그때의 참상을 폭로 한일이 있다. 하지만 일본인출신 정신대원이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로다(성전.68)여사는 『남양군도에서 무참히 짓밟힌 한국인 동료의 원혼이라도 달래기 위해서 악몽과 같은 과거를 들춘다』면서 『미군이 상륙하자 종군위안부에게 저지른 죄악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기관총으로 쏴죽였다』고 술회했다. 여기서 모면한 정신대원은 적도근처 라바울이나 수마트라에서 도망쳐 살고 있을것이다. 일본은 침략전쟁의 희생자인 이들을 찾아서 귀환시킬 책무가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