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사업 송재욱씨 가족/우리땅지키기 굳은의지/87년 당시 「무인도」소식에 결심/관청등 미친사람 취급 숱한 난관/서류뗄때 불편감수…나무심기 온정성독도에 일가족 6명이 호적을 옮겨 새로운 가문의 뿌리를 내렸다.
독도호적1호인 송재욱씨(49ㆍ공릉섬유공업사 대표ㆍ서울 노원구 공릉동 408의6) 가족은 최근 한일간현안의 파고를 보면서 독도지키기의 의지를 새삼 다지고 있다.
송씨는 87년9월 당시 62세이던 독도주민 최종덕씨(어부)의 사망으로 독도가 무인도화했다는 소식을 듣고 호적(전북 김제군 봉남면 종덕리 209)을 독도로 옮기기로 결심,우여곡절끝에 같은해 11월 독도의 형제섬인 동도(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산67)로 전적신고를 마쳤다.
송씨는 호적을 옮긴뒤 가족들의 호적등ㆍ초본이 필요할때마다 울릉도배편에 의지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나는 반도에서 태어나 독도에 일가의 뿌리를 내렸다』는 자긍심에 비하면 그런 불편은 사소한 일이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송씨가 독도사람이 되기까지는 일부가족들의 반대,주위의 냉소,행정관청의 「타성의벽」등 숱한 난관을 넘어야 했다.
87년추석 전북 김제의 선영을 찾아 조상에게 결심을 고한 송씨는 와병중이던 아버지 송렬옹(79)에게는 차마말도 못꺼내고 맏형 재승씨(57ㆍ농업)에게 전적의사를 밝혔다.
극구반대하던 형도 『일시적 감정으로 호적을 파가는 것이 아니고 독도를 지키겠다는 굳은의지가 있다면 말리지 않겠다』고 허락했다.
부인 계명의씨(47)가 동네에서 이화유치원을 10년째 운영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송씨의 독도이적에 대해 주위에서는 『공장이 부도가 나 외딴섬으로 도망치려한다』고 입방아를 찧기도 했다.
송씨는 그해 자신의 생일인 10월19일 하오10여시간의 뱃길끝에 울릉군청 호적계를 찾았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서울에 사는 호남사람이 무슨이유로 아무 연고도 없는 독도로 본적을 옮기려고 하는냐』며 미친사람취급을 했다.
송씨는 3일동안 울릉군청 도동읍사무소 경찰서등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호소했다. 당시 울릉읍 호적계장 이영육씨(현재 포항시 죽도동 총무계장)는 일단 자신의 집주소에 송씨의 주민등록을 이전시켜놓고 같은해 11월2일자로 송씨의 본적을 독도의 동ㆍ서도중에서 동도로 옮겨주었다.
송씨는 87년 12월16일의 대통령선거때는 울릉군 선관위의 통고로 부재자투표를 했다.
송씨는 그뒤 88년10월 결성된 푸른독도가꾸기모임(회장 이덕영ㆍ43ㆍ울릉군 북면 천부동 천부4리1)의 독도조림 5개년계획중 2차연도사업에 참여,지난달 22일 본적지가 된 독도땅을 밟았다.
송씨는 회원들과 함께 울릉도에서 동백ㆍ향ㆍ섬괴불ㆍ보리장나무 등 7백50그루와 흙 8백㎏을 독도로 싣고가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나무를 심었다.
주민과 식수는 있으나 숲이 없어 국제해양법상 섬이 아닌 「암초」로 간주되는 독도는 푸른독도가꾸기모임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3차례 식목했는데 지난해 두차례 심은 1천1백그루중 5백여그루의 활착도 이날 확인했다.
송씨의 독도전적은 항일을 한 가문과 조국애에서 비롯 된다고 주위에서는 말한다.
송씨는 서울농업대(서울시립대의 전신) 수의학과 2학년이던 62년12월 최초의 브라질이민단에게 조국의 흙을 전달(한국일보 62년 12월9일자 보도)했고 83년부터 부인이 운영하는 유치원마당에 「독도는 우리땅,백두산도 우리땅」이라는 푯말을 세워놓고 있는 사람이다.
송씨와 부인,장녀 진숙양(21ㆍ한국외대4) 장남 진화군(19ㆍ전주 우석대1)등 4남매는 뭍에 살면서도 마음은 항상 새로운 고향에 가있다.【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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