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5월의 연휴덕분으로 난국의 시름을 한때나마 잊고 지냈다. 쉬는날 바람에 걱정은 덜었어도 난국의 실체는 그대로이지 달라질 것은 없다. 앞으로 며칠이 어쩌면 사태의 큰 고비일 수 있다. 긴장의 고삐를 더 죄어야지 마음을 풀기엔 때가 이르다.현대중공업사태로 확산될 듯한 노사분규는 다행스럽다 하게 진정국면의 징조들을 나타낸다. 동조파업이 있어도 시한부였고 현대계열사들의 조업재개분위기로 울산은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총체적 난국」의 인식을 바탕으로,오늘 노대통령이 직접 시국 담화를 발표할 예정이고 내일은 경제난국 극복대책이 밝혀지며 9일엔 민자당 전당대회가 열릴 일정으로 온 나라가 급박하게 돌아갈 것으로 내다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대응이 국민 전반에 확산된 난국 신드롬을 과연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지 기대와 불안이 여전히 엇갈려 혼재한다.
먼저 시급한 과제는 노사관계의 안정,나아가서 산업평화와 정착이다. 최근의 노사분규는 그 성격이 과거와 다르다는 판단이 널리 퍼졌음이 사실이다. 복지보다 정치투쟁의 양상이 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래서 노ㆍ사ㆍ정 모두가 분규를 보는 시각차이가 매우 크다.
기업과 정부측은 파업의 불법성을 부각시키며 제3자 개입에 의한 체제전복세력의 위험을 반복해서 경고한다. 반면에 노조측은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며 구속자 석방과 단체협약이행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각차는 대립적이고 철저히 상호배타성을 드러내고 있어 수습과 해결의 확실한 실마리와 화끈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이르렀다.
이 현실을 똑바로 보고 인식할때 위기의 원인은 저절로 드러난다. 겉으로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이든,그것은 외국의 언론이 지적했듯 신뢰의 위기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노사는 물론 정부까지 얽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함으로써 오늘의 사태를 자초한거나 다름없다고 할것이다. 여기에 공권력과 파업이라는 극약처방이 상충해서 증오의 앙금만을 남기고 있는 딱한 실정에 놓이게 되었다.
비록 우리가 빠져든 상황이 험하고 어렵다해도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마음을 굳게 잡으면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열릴 것으로 믿어 의심 않는다. 이제 우리는 지금의 진정국면을 발판으로 위기를 호기로 전환케하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질 차례다.
정부는 불법 분규엔 강력히 대처한다는 방침을 거듭 강조하고 있으나 그것은 원칙의 문제다. 적어도 공권력 발동만은 유연성과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당장 어지럽다는 이유로 싹 쓸어낸다면 그 뒤처리가 훨씬 난감해질 우려가 많다. 수배자 한사람을 잡겠다고 MBC에 뛰어든 경찰의 돌격성은 경솔하기가 짝이 없다. 발등의 불을 꺼놓는다며 더큰 불을 지르고 나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리하여 방송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은 누가 지겠는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얽힌 실타래는 끈기있게 풀어가야지 끊어버리면 아무 쓸모도 없어지게 된다. 왜 이처럼 쉬운 원리를 정부는 망각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우리는 노조와 노동운동에도 간곡한 당부와 고언을 보내고자 한다. 파업은 노동자의 무기이며 노동운동의 최후수단이다. 이것을 남용해선 안된다. 정당하게 쓸때 써야 효용도가 높은 법이다. 솔직히 말해 국민은 붉은 머리띠와 팔뚝휘두르기나 화염병 세례에,최루탄만큼 끔찍하고 신물이 날 지경이 되었다. 이것은 어느쪽도 편들거나 거들고 싶지 않은 많은 국민의 심경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난국이든 위기이든 너무 두려워만 할 까닭은 없다. 극복의 의지만 있으면 자꾸 비탄과 비관에 젖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의 힘을 난국증후의 해소와 위기극복에 집중시켜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역시 믿음의 회복이다. 정부의 소신과 실천이 확고하고 여일함을 보이는 게 선결문제이고 기업이 솔선해 불신해소에 앞장서 주기를 기대하는 바다. 노동자와 노동운동 세력도 신뢰구축에 협력하고 기여할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의 험난한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는 오로지 우리 자신에게 달렸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 만을 돕는다는 말이 지금처럼 절실할 때는 없을 줄 안다. 난국은 우리가 만들었고 우리가 풀 수 있을 따름이다. 지금부터 며칠이 아주 중요한 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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