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지위」 협상맞춘 생생한 자료/일 과거반성 촉구… 학술가치 높아오늘날 재일본 한국인을 형성한 여러 요소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일제의 「징용」이라는 한국인 강제연행에 의한 노동력 수탈정책이었다. 재일본 한국인 3세의 법적지위 문제가 한일간 외교문제의 초미의 쟁점으로 대두한 이때 「한국일보」가 「징용의 현장」을 증언하는 새로운 사진들을 대대적으로 발굴하여 소개한 것은 시의적절할 뿐 아니라 한일관계에서 양국국민들과 위정자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을 시사해 주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일제의 한국인에 대한 「징용」은 1938년 이전까지는 소위 「모집」의 방법을 취하다가,1939 7월 소위 「국민징용령」을 공포하면서 무력에 의한 강제 징발을 자행했다. 재일본 사학자 박경식씨의 통계에 의하면,1939∼45년 사이에 한국인으로서 한반도 안의 일제의 작업에 강제 노력동원된 인원이 약 4백80만명,일본본토와 남양군도와 사할린 등지에 강제로 끌려가 노예노동에 투입된 인원이 약 1백53만명에 달하였다.
일제의 「징용」의 방법은 처음에는 소위 「관알선」이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의 요구에 의해 총독부가 각 도ㆍ군ㆍ면 별로 할당해서 통지서를 발부하여 강제징집 했으나 한국인들의 저항이 심해지고 대상자들이 집단으로 깊은 산속 등에 도피하여 불응하자 일제는 장날을 이용해 군용트럭을 대어놓고 장보러 나온 청장년들이나 들에서 농사일을 하는 농민들을 기습하여 강제납치해서 끌어가기도 하고,일본군이 직접 지역별로 동원반을 파견해서 야간에 한국인의 집을 기습하여 청장년들을 납치해서 끌어가기도 했다.
일제는 이 한국인들을 일본 본토와 남양군도와 사할린 등지의 석탄광,각종 금속광산,군수공장,철도공사,군사도로 공사,수력발전 시설공사,비행장 건설,항만공사,군사시설 공사,참호 굴착 등에 강제 투입 하였다. 일제는 이 한국인들을 노동조건이 가장 극악하고 가장 위험한 작업장에 투입하여 중노동을 강요,혹사했기 때문에 사망자ㆍ부상자ㆍ질병이 환자가 속출 했으며,이들은 모두 「소모」로 처리 되었다.
일제는 군사기밀을 지킨다는 이유로 이 징용당한 한국인들의 생사와 행방을 알리는 편지 등 통신도 차단하여 허락지 않았다.
이러한 반인간적 노예노동에 도저히 견디지 못한 한국인 징용자들의 도망률은 일본군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30∼40%에 달했는데 다행히 도망에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체포돼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가장 나쁜 작업장에 재투입 되었다.
「징용」당한 한국인들의 사망자가 속출했지만,일제는 「군사기밀」을 내세워 가족들에게 사망통지조차 해주지 않았다. 일제말기에는 군사기밀유지의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도처에서 한국인 징용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이 자행 되었다. 장야의 송대 대본영에서의 수백명 집단학살,오키나와 열도에서의 2천명에 대한 몇차례의 집단학살은 그예이며 이밖에도 도처에서 집단학살의 유골이 발견되고 있다.
한국의 가족들은 일제에 의해 징용당해 끌려간 아들,남편,아버지의 생사를 전혀 알지 못했으며,1945년 8ㆍ15해방후에 귀환하지 않고 소식도 없는 경우에야 사망했음을 알게 되었는데,현재 한국인 징용자 중의 사망자는 약 15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제는 또한 1944년 「징병제」를 실시하여 약 21만명의 한국 청년들을 강제징집해서 전선의 대포밥으로 내몰았다. 이 중에서 살아 돌아온 청년들은 약 5만명 정도이다.
또한 일제는 1943년부터 이른바 조선여자 정신대라는 것을 만들어서 12∼40세의 한국여성들을 징발하여 종군위안부로 희생시켰다. 현재 일제시대 연구가들은 적어도 10여만명의 한국여성들이 일제의 정신대로 끌려가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8ㆍ15해방후 살아남은 징용ㆍ징병자의 대부분은 귀환했지만,일부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본에 잔류해서 오늘날 제1세대의 재일본 한국인 형성의 골간이 되었다. 일본안에서 태어난 이들의 3세가 협정영주권,지문날인 폐지,취업평등권,참정권 등의 자연법적 기본권을 보장받아 차별없이 인간다운 생활을 해야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에 한국일보가 대대적으로 발굴,보도한 「징용의 현장」 사진들은 학술적으로 귀중한 새 자료들임은 물론이요,일본 위정자 들에게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여 재일한국인 3세의 법적 지위문제에 대한 당연한 성의를 촉구하는 것이고,한국 위정자들에게는 재일동포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더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를 내포한 매우 귀중한 뜻을 가진 것이라고 본다.〈서울대교수ㆍ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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