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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유럽 주도권유지 포석/부시,「유럽 핵현대화」철회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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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유럽 주도권유지 포석/부시,「유럽 핵현대화」철회배경

입력
1990.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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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결속 걸림돌 제거/통독 나토잔류 명분도/대소 군축협상 수세탈피도 노려조지ㆍ부시 미대통령이 유럽배치 핵무기 현대화계획을 백지화하라는 국내외의 한결같은 여론에 마침내 무릎을 끓었다.

부시대통령은 3일 서독 등에 배치된 88기의 랜스미사일과 8인치 W79곡사포 등 3천7백여개의 핵탄두를 신형으로 교체하려던 당초의 계획을 취소한 것이다.

부시대통령의 이같은 방침은 『동구의 민주화로 소련의 위협이 현저히 줄어든 유럽에서 냉전의 잔재를 일소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실은 독일재통일과 EC통합 가속화 등 새로운 질서가 형성돼 가는 유럽에서 주도권을 계속 장악하려는 부시다운 실리외교의 표본이다.

부시대통령이 이미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이들 핵병기들을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는다는 손쉬운 조치하나로 얻을 전략적 효과는 막대하다.

우선 부시는 자신이 신데탕트시대에 걸맞는 군비삭감을 선도하고 있다는 생색을 낼 수 있게 됐다.

사실 서독에 집중배치돼 있는 이들 핵무기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불어닥친 동구의 개혁열풍으로 그 정치ㆍ군사적 목표를 잃고 말았다. 즉 이들 핵무기의 주요 목표물이었던 동독 폴란드 체코 등이 하루 아침에 친서방국가로 변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또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결속을 방해하던 커다란 걸림돌 하나를 제거한 셈이다.

랜스미사일 등 단거리 핵무기 현대화계획은 지난해 이맘때 열린 나토정상회담 당시 회원국들간에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켜 나토의 단결에 큰 흠집을 냈던 것이다.

최근에는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서독배치 핵무기현대화에 반대하는 서독에 공개적인 지지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또 재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서독에서 미국정부가 최근 실시한 한 여론조사결과 응답자의 85%가 핵무기 현대화 방안에 반대하고 있음이 확인됐었다.

따라서 통독과 EC통합으로 재편될 「유럽 1가」에 대한 영향력확보를 꾀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같은 유럽인들의 핵무기 철거요구에 적절한 대응이 필요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 조치는 소련이 새로 태어날 독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구심을 다소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이며,통일독일의 나토잔류 당위성을 역설할 명분도 제공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나토의 한 고위관리는 『이번 군축선언이 통독에 관한 소위 「2+4회담」 직전에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번의 군축조치는 또 현재 빈에서 진행중인 유럽주둔 재래식군사력(CFE) 감축협상 등 동서군축 협상에서 미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ㆍ베이커 미국무장관은 4일 브뤼셀에서 예두아르트ㆍ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단거리 핵무기(SNF) 감축협상을 가속화시킬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이커장관은 또한 『소련이 통일독일의 나토가입 반대방침을 철회하는 대가로 서독주둔 랜스미사일 일부를 조기 철거하겠다』고 제의한 것으로 전해져 미국이 이미 유럽배치 핵무기를 대소 군축협상에서 유용한 카드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미국정부는 나아가 재래식 군사력(CFE)의 철수가 실현되기전에는 SNF감축협상을 추진하지 않겠다던 종전의 입장을 변경,CFE협정의 잉크가 마르자마자 SNF감축협상을 개시하자고 채근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미국이 경제난과 발트국가들의 독립운동으로 위기국면에 처해있는 소련의 허를 찔러 그동안 수세에 빠져있던 대소군축협상에서 이니셔티브를 탈환하려는 포석임이 분명하다.

부시행정부는 이처럼 대소군축회담의 고삐를 죄면서도 이번 조치로 군부내 강경파에 몰려있는 것으로 전해진 미하일ㆍ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운신폭을 한층 넓혀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최근 악화된 경제난과 일부 공화국의 연방탈퇴 움직임 등으로 소련군부로부터 심각한 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일 영국의 ITN방송에 따르면 소련군부는 모스크바에서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2월25일 6천여명의 정예부대를 동원,고르바초프에 대한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 방송은 이어 고르바초프가 그후 CFE협상에서 종전의 유화적인 입장을 바꿔 군부의 시위에 답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보도가 사실이라고 가정할 때 부시의 이번 조치는 통독의 비핵화를 강력히 요구해온 소련군부를 어느정도 만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조만간 최신예 공대지 핵미사일을 영국에 배치할 계획임을 지적하면서 소련군부가 부시의 이번 조치에 냉담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보는 군사전문가들도 있다.

영국의 한 군사전문가는 부시의 이번 감군조치는 『권총 2자루를 소총 한자루와 바꾼 격』이라고 비난했다.【이상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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