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달받은 소년가장 정선연군 4남매/어버지ㆍ어머니 모두 병으로잃고 단칸셋방살이 3년 두 누나 중학도 포기 공장ㆍ분식점서 집안 뒷바라지/“동생공부”가 첫째 소원부모의 사랑을 잃고 사는 소년가장 정선연군 (8ㆍ인헌국교3ㆍ서울 관악구 봉천2동 94의1)에서 이번 어린이날은 난생 처음 따뜻한 이웃의 사랑을 안겨주었다.
세누나와 살을 부비며 사는 3평짜리 단칸방에는 사랑의 쌀을 쌓아놓을 곳도 없었지만 사랑의 쌀은 어린4남매의 쓸쓸함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어린이날을 하루앞둔 4일 하오 사랑의 쌀나누기운동본부 박세직본부장과 봉천교회자원봉사자들이 봉천동 언덕배기 선연이네집을 찾아갔을때 선연이는 혼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있었다.
반 한공기와 된장국 한그릇이 점심의 전부였다.
두사람이 비껴가기도 힘든 비좁은 골목길에 나있는 쪽문을 열고 들어간 자원봉사자들은 한동안 주저했다. 20㎏들이 사랑의쌀 8부대를 들여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옷장과 책상이 가지런히 놓인 방에 쌀을 내려놓으니 방이 가득 찼다. 선연이네는 5년전만 해도 가난했지만 단란한 가정이었다. 관악구청 청소원으로 20년이상 근무해온 아버지의 리어카를 어머니와 세딸이 새벽마다 번갈아 밀면서 항시 웃음을 잃지 않아 왔다.
아버지 정영설씨는 남의 궂은 일은 도맡아하고 더 어려운 동료에게 방을 얻어줄만큼 인정이 많고 쾌활해 봉천동주민들에게 유명한 「정씨아저씨」였다.
그러나 85년에 선연이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뜨자 아버지는 화병을 얻고 말았다.술로 시름을 달래던 아버지는 선연이가 1학년때인 88년에 간을 몹시 상해 4남매를 남겨두고 어머니의 뒤를 따르고 말았다.
어버지가 병석에 눕자 장녀 수연(18)이는 중학2학년때 학교를 그만뒀다. 살림을 떠맡고 동생들을 돌봐야했었다.공부를 잘하던 둘째 미연(16)이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큰딸 수연이는 공장에 취직했고 둘째 미연이는 분식점에서 일했고 셋째 지연(13ㆍ중1)이는 신문을 돌렸다. 미연이는 작년에 고교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해 이제 고졸검정고시를 준비중이다.
4남매는 아버지가 돌라가신후 2년동안 이사를 3번했다.5년째 공장에 다니는 수연이는 어버니를 닮아 알뜰하다.푼푼이 모은 월급과 직장의 도움으로 봉천7동 사글세방에서 지난일요일 이곳2동으로 이사왔다. 대문도 없고 화장실도 공동으로 쓰는 4백만원짜리 단칸 전세방이다.
막내 선연이는 낮에 혼자 집을 본다.선연이가 제일 좋아하는 날은 큰누나 수연이가 오는날인데 선연이는 큰누나가 직장이 멀다며 기숙사생활을 하는 진짜이유를 안다. 네식구가 자기에는 방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선연이는 명랑하고 천진하지만 철이 들었다. 엄마가 보고싶으면 누나들몰래 사진을 꺼내본다. 학교서 돌아오면 둘째누나가 해놓고 간 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깨끗이하고 청소까지 마친다.
첫째 수연이의 가장 큰 소망은 세동생을 모두 대학공부시키는 것이다. 그것만이 돌아가신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믿고있다.
그러나 동생들이 자라나 방이 하나더 필요하고 미연이학원비도 대야하는 수연이의 20여만원 남짓한 월급으로는 꿈을 이루기 어려워 걱정이다. 4남매는 어린이날 사랑의 쌀로 밥을 지어먹고 모처럼 어린이대공원에 놀러갈 계획이다.
한국일보사와 사랑의 쌀나누기운동본부는 이날 처음 서울시내 소년소녀가장 7백80명에게 일제히 사랑의 쌀을 나누고 이들을 격려했다.
사랑의 쌀은 22개구의 각교회에 나눠져 교회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소년소녀가장들을 방문 1인당 20㎏들이 2부대 (4만7천원 상당)씩을 전달했다.
운동분부는 오는9일 경기도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쌀을 전하고 이달말까지 전국 1만3천여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예정이다.【한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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