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지자제 역설하나 내심은 반대/관직의 권위 무너진 채 민주신망 못따라/공직사회선 무사안일만 만연정부·여당이 말하는 「총체적 난국」을 국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생활속에서 절감하고 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행복이나 보람을 느끼지 못한 채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불안하고 짜증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88년에 서울올림픽이라는 한바탕 잔치를 치르고 난 뒤부터 허탈과 정신적 공복감을 느끼던 국민들은 이제 암담한 절망감에 휩싸인 채 구심점도 지향점도 없이 표류하고 있다.
잘 차려진 무대위에서 남의 눈을 의식한 「쇼」를 한차례 벌인 직후부터 내실이 갖춰져 있지 않았던 「친절 질서 청결」은 급조된 가건물처럼 일순간에 무너져 버렸고 폭력 과소비 투기 향락 계층간 갈등의 도도한 탁류가 침수사태를 빚고 있다.
국민들의 불만과 짜증스러움은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돼 나타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2중구조,좁혀 말하면 위정자들과 행정의 명과 실이 다른 데서 비롯된다고 파악된다.
모범을 보여야 할 지도층인사들의 겉과 속이 다른 행동,현실과 유리된 각종 정책과 행정은 부정과 비리를 낳게 하며 정당하지 못한 간지만을 키워준다.
예를 들어 정치인들은 저마다 지방자치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지방자치제 실시를 원하지 않고 있으면서 국민을 들먹이며 가당찮은 정쟁을 일삼고 있다.
82년부터 시작된 택시합승 단속도 걸리는 사람만 억울할 뿐이다. 전국택시노련 서울시지부는 요즘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법규지키기·합승안하기」 준법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또 어린이날인 5일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승객을 무료로 태워주겠다고 밝히면서 회사수입을 떨어뜨리는 태업을 하고 있다. 합승은 이미 금지돼 있고 법규준수는 당연한 일인데도 그것이 투쟁방법이 되고 있는 모습이 우리 사회의 서글픈 현주소이다.
좌석버스는 말 그대로 모든 승객이 앉을 수 있어야 하는데 입석승객으로 만원운행을 하기 일쑤이지만 단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갈길이 바쁜 시민들은 좌석없는 좌석버스를 탐으로써 결과적으로 위법행위를 조장해 주고 있다.
보사부의 업무인 주문식단제는 벌칙까지 마련돼 있으나 누구나 알다시피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생수의 경우도 겉으로는 국내시판이 금지돼 있으나 마실 만한 사람은 다 사 마시고 있다.
길거리에 돌출광고물을 세우고 창문에 선팅광고를 하는 것은 지금도 금지돼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시는 1백만개의 공해간판을 단속,철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아직 불법광고물 단속계획은 유효하지만 실제로는 임의적 자의적 단속이 실시될 뿐이다.
5공화국 초기에 정부는 「작은 정부」를 내세워 각부처의 기구를 대폭 통폐합·개편했었다. 당시의 부작용은 그뒤 부처별로 조금씩 바로잡혀졌고 부활·확대된 정부기구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명분상 「국민편의·행정수요 과다」등을 내세운 기구부활·확대조치가 실제로는 힘센 부처,로비가 강한 부처위주로만 수행됐다는 점이다.
문교부가 맡고 있던 학교급식업무는 82년에 신설된 체육부로 이관됐다가 90년부터 소문도 없이 문교부로 되돌아왔다. 업무이관때마다 그럴 듯한 이유가 붙여졌지만 그것은 발전을 위한 시행착오가 아니라 부처간의 핑퐁일 뿐이었다.
그토록 중요하다고 강조되던 금융실명제도 백지화돼 버렸다.
한 담배소매상은 요즘도 담배인삼공사측이 휴일 전날이면 1주일치 담배를 한꺼번에 받아줄 것을 요구한다고 불평했다. 양담배 판매율이 급신장하자 국산담배를 피우라고 외치면서도 구태의연한 수법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할 것,깨끗하게 살 것을 선서했던 그 손으로 지금도 교통경찰관들은 길거리에서 뇌물을 받는다.
또 관직의 권위에 대한 전통적 전근대적 존경과 신망이 무너진 채 새로운 민주적 신망의 기초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늘의 공무원들은 무사안일,움직이지 않는 행정의 타성에 젖어들고 있다.
「군림하는 행정」은 많이 해소됐으나 복지를 최대의 국정지표로 내세운 6공정부의 방침과 달리 그들은 국민편의와 복지를 조장하는 행정에 소홀하거나 익숙치 않다.
언젠가 한 대학교수는 『문교부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그야 제일 좋지요』라고 대답했었다.
이같이 국민들은 정부와 행정에 대한 불신 배신감을 쌓아가면서,지도층인사들의 겉과 속이 다른 행위에 괴리감과 위화감을 키워가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신명을 낼 일도 없고 마음붙일 곳도 없는 국민들은 돈따라 움직이는 선수들에게 굳이 연고를 대면서 프로스포츠에 열을 올리며 헛된 감정소비를 하거나 고스톱 폭음·향락에 탐닉하고 있다.
의롭지 못하고 명과 실이 다른 사회에서의 투기 과열과외 과소비 향락등은 국민들의 일탈행위이며 자기방기행위이다. 그것은 곧 우리 사회의 자정력과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을 시험하는 행위이자 도움을 호소하는 구조신호이기도 하다.
국민들은 익사할 지경이다. 이제라도 결과 속이 일치하는 사회,명과 실이 상부하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통치권 차원의 피나는 자기반성과 새로운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임철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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