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추기경/정치잘하면 「대권」저절로/노사는 적대가 아닌 공존의 한몸/파업은 최후수단… 결과생각해야여권마저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한 현재의 위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적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민주화로 가는 과도기적 진통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도 심각한 욕구분출형상과 힘대결의 악순환속에서 정치는 공동화되고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는 어디서 부터 오고 있으며 그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한국일보는 난국극복을 위한 「긴급제언」을 사회지도급인사들로 부터 모아 싣기로 했다. 그 첫회로 김수환추기경의 제언을 정리해 싣는다.【편집자주】
5월은 가톨릭교회로서도 성모성월이지만 어린이날,스승의날,어버이날이 함께 있는 「아름다운 달」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찬미속에 반겨야할 이 「아름다운 날」을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걱정과 우려속에서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부ㆍ여당은 5월 첫날부터 현시국을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하고 있고 국민의 모든 계층에서 어려움을 헤쳐 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현시국은 분명히 난국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난국의 실체를 인정하는 데 인색합니다. 또 모두가 난국극복의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길을 가지 않으려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공동체로서 난국극복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자성하면서 어디에서도 자성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달라져야 한다면서도 변화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모든 책임은 먼저 정치지도자들과 가진자 쪽이 져야 하며 국민은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들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국민들이 깊이 인식할 수 있는 가시적 변화의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 가시적 변화가 무엇이며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이제는 정신을 차렸구나』하는 가시적 변화가 있어야만 합니다. 한마디로 드러매틱한 자세의 변화가 있어야만 국민들사이에서 자성의 분위기가 형성될 것입니다.
우선 정치지도자들은 사랑의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인간,다시말해 국민에 대한 사랑을 갖고 국민이 겪고있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정치에 대한 민심의 이반현상은 정치에 사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며 가난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를 잘하면 대권은 저절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대충대충 하면서 대권만 노린다면 국민들은 실망할 것입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있는 자들의 관용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관용은 식탁위의 남아있는 빵을 조금떼어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허울만의 관용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공익을 위해 모은 재산을 서슴없이 내어놓는다든지 없는 사람들과 호흡을 함께 해야 합니다.
기업가들과 근로자들은 결코 적대관계가 아닙니다. 함께 공존해야 할 파트너입니다. 근로자들은 회사가 있으니 일터를 가질 수 있으며 기업가들은 근로자들이 있으니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근로자들의 고충을 아는 기업가의 모습이 쉽게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업가의 기업정신은 아직도 옛그대로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 노동현장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도 여전히 미숙합니다.
여기에서 한마디 고언을 해야겠습니다.
파업은 최후의 부득이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산업현장의 파업을 너무 자주 봅니다. 파업을 하면 기업이 어떠한 타격을 받고 그 타격이 근로자들에게 어떻게 되돌아 오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인내와 자제,그리고 상호포용의 틀속에서 대화를 통해 요구조건을 관철시키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노동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 위해,또 열악한 근로조건을 고치기 위해 노동조합을 구성해 요구를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신근로자들이 자신들을 노동자로 부르면서 노조를 통해 파업을 유도하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가 병원의 파업입니다.
병원의 파업은 윤리적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두 노조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제(1일)는 마침 법의 날이었습니다. 법이 지켜져야만 국민이 정직해집니다.
국민 모두가 정직해지면 우리는 난국을 헤쳐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현실은 법이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도자들이 국민을 지배하기 위해 존재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아직도 민주화의 진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의 진통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우리는 뜻하지 않은 우를 자초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아름다운 달」을 「잔인한 달」로 부르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5월을 이렇게 부르는지 모두 자성해 봅시다. 그러면서 다시 「아름다운 달」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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