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의 최대의 현안이었던 재일동포의 법적지위 향상문제를 위해 서울에서 열린 한일 외무장관회담은 외형적으로 몇가지 타결을 보았으나 내용면에서는 보다 많은 것을 뒤로 미룬 점에서 현안의 해결이 아닌 연기라는 인상을 짙게 받게 된다.외무부는 이번 회담으로 교포3세이하 후손에 대한 영주권의 자동부여,지문제도의 폐지등 재일동포의 지위향상에 또 하나의 진전을 가져왔다고 자평하고 있지만,따지고 보면 교포3세의 영주권과 지문철폐에 국한시키고 있어 지금 당장 생존을 영위하고 있는 70만 재일동포의 차별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평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재입국 허가기간을 2년에서 최대 5년으로 연장한다든지,강제퇴거사유를 7년에서 내란ㆍ외환의 죄에 해당하는 15년의 징역에 처했을 때로 완화했다고는 하나 이것도 국제인권협약에 따라 영주권자에게는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이다. 한발 더 나아가서 협정영주권자에게는 강제퇴거조항마저 삭제해야 마땅한 것이다.
우리가 재일동포의 지문날인제도의 폐지등 법적지위 향상을 요구하는 것은 그러한 제도적 보장장치가 타의로 일본땅에서 살아야만 하는 재일동포들이 일상에서 차별받지 않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분위기조성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과 똑같이 연간 6천억엔 이상의 납세의무를 지면서도 참정권은 고사하고 재일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원으로도 채용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사회보장면에서의 차별은 90여가지에 이르고 있고 행정상의 차별은 2백여가지에 이르기 때문에 재일동포들이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영주해야 할 땅에서 늘 부평초처럼 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의 상황은 한일 두 나라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타개돼야 할 문제인 것이다.
한일 외무장관회담의 결과가 70만 재일동포의 민족차별을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한 채 미봉으로 타결된 데에는 우선 일본측의 오래된 무성의한 태도가 그 원인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노대통령의 방일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 것 같은 회담에 임하는 우리측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방일과 재일동포문제를 연계시키지 않는다고까지 대외적으로 밝힌 것도 그렇고,외무부 실무협상에서 당초엔 신협정을 체결,9개항의 요구조건을 내세웠다가 4대악법 철폐로 후퇴하고 나중에는 지문날인 철폐등 2개사항으로 줄이는 등에서 그런 점을 역력히 보게 되는 것은 여간 실망스런 일이 아니다.
회담에는 상대가 있고 또 우방국간에는 적절한 시기에 정상들의 방문외교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한쪽의 굴욕이나 패배를 결과적으로 감내케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회담결과를 본 황영만 민단사무총장은 재일3세에 한해서 지문날인제를 적용치 않기로 한 점을 일단 평가하지만 15세이하의 2세가 25만명이나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지금의 상황으로선 노대통령의 방일은 멀지않아 공식발표될 것 같다. 우리는 노대통령의 방일이 국내외의 이런 실망감을 해소시키는 방향에서 성사돼야 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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