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실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뒤죽박죽인 상황이다. 당당하게 우리 발로 걸어가는 게 아니라 거친 격랑에 밀려 떠 내려가는 형상과 같다. 어디로 흘러가고 무엇에 부딪쳐 난파할지 예상조차 불가능하다.불안과 위기의식이 팽배해 가더니 눈앞의 현실로 닥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란 진단이 뒤늦은 것이라는 한탄이 터져 나온다. 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파급되어 온다. 어느 누구도 감히 강건너 불 보듯 할 수 없으리만큼 갖가지 사태가 빈발하고 그 양상이 긴박하다.
위기의 회오리 가운데로 KBS사태도 휘말려버렸다. 방송정상화의 서광이 비칠 듯하더니 상황은 일시에 최악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공권력 개입으로 화를 부르고 다시 공권력에 의해 농성은 해산당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단순한 후유증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사태를 야기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같은 방송사인 MBC가 시한부이긴 하지만 연대제작거부에 돌입했고,현대중공업과 맞물려 메이데이를 기점으로 파업사태가 번져가고 있는 암울한 실정에 이르렀다. 내일은 커녕 당장 오늘 하루가 어찌 되는지 모두가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실의 좌절 무력감에 시달린다. 물가 증시 생산현장이 뒤틀리고 꼬이며 사회불안이 가중되어 갈 뿐이다.
얽힌 매듭은 하나씩 풀어가는 수밖에 묘책이 따로 없다. KBS사태도 그렇다. 지금까지의 경위를 되돌아 따지고 분통이나 터뜨릴 여유가 이젠 없다. 지금은 무엇보다 침착과 냉정이 요구된다. 자칫하면 모두 함께 벼랑에서 굴러 떨어진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대결을 지양하고 해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KBS소속원은 일치하여 방송인의 자세로 복귀함이 마땅하다. 무한투쟁은 방송인의 터전을 스스로 황폐화시킬 뿐이다. 공권력 개입에 따른 새로운 진통을 멈추는 길은 신임사장과 노조는 물론 전사원이 비상한 결의를 갖는 것이다.
타협은 양보와 후퇴를 포용한다. 사장이나 제작거부를 결사주장하는 사원들은 감정과 격식의 구애를 빨리 벗어나 양보와 후퇴정신을 선택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방송과 국민을 위하고 사랑하는 방도임을 깊이 새겨야 한다. 더 이상의 강경일변도는 양쪽에 더욱 심한 타격을 입히고 바라지 않는 파국을 초래할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아울러 우리는 KBS사태와 연관된 다른 방송사의 제작거부를 단호히 반대함을 밝혀두고자 한다. 뜻을 함께 함은 그들의 자유이겠으나 또다시 전파를 자의로 흔들어버리는 일은 명분도 없고 비합리적이다.
그러한 연쇄반응은 오히려 KBS사태의 윤리성에 상처를 입힐 우려마저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도대체 전파를 무기화하여 누구와 싸우자는 것인지 얼른 납득이 안간다.
정부의 입장에도 과감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강경과 경색을 풀고 「민주방송」의 위상확립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와 구상을 내놓아야 옳다. 그래야 쌓인 불신이 해소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이번 사태를 우리 방송의 안정과 전환을 꾀할 수 있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
KBS사태는 방송만의 일이 아님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노력은 정당한 방송의 자리잡음으로부터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밖에서 돌을 던지는 충동도 삼가야 하고 자체적으로 해결방안을 마련해 실행하면 격랑이 그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오늘의 사태를 이성의 눈으로 직시해 주기를 바란다. 위기는 스스로 풀지 못하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불행이 덮침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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