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엄상섭의원은 1950년대 기간동안 민주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뛰어난 정치인중의 한사람이다.언젠가 엄의원이 「도척이와 정치인」이란 제목으로 여당지도자들의 독선 독주와 오만한 무책임 무능을 꼬집는 글을 써 화제를 모은 적이있다. 다음은 요약한 글의 내용이다.
옛날 한사람의 도척 (중국춘추 시대의 큰도둑)에게 『도둑들에게도 예절과 도의가 있는가』고 물었다. 이에 도척은 『물론 도둑들에게 도의가 있다』면서 설명했다.
즉 「남의 숨겨둔 재물을 알아 맞추니 성이요」 (지인장성야) 「도둑질을 할때에는 먼저 들어가니 용이요」 (선입용야) 「도둑질이 끝난뒤에는 맨나중에 나오니 의이며」 (후출의야) 「훔친물건을 고르게 분배하니 인이요」 (균분인야) 「선한것과 악한것을 구별할 줄 아니 지이다」 (변선악지야)라고 풀이했다.
도척은 『이처럼 성ㆍ용ㆍ의ㆍ인ㆍ지의 오도를 갖추지 못하면서 능히 큰도둑이 되었다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오늘날 이땅의 정치인 정치지도자중 도척이 정도의 도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을까? 비겁하고 용렬하고 무도하며 권력과 명리추구에는 선수요 모략중상에는 명수인 것이 정치인들의 공통요소일 것이다. (…중략…)
정치인 정치지도자들은 진실성을 운위할 자격마저 상실한 것이다. 권력과 감투에는 날쟁비 (나는 장비)요 국리민복에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이 오히려 불안과 혼란의 원인만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런 정치인들은 도척이의 오도는 커녕 단 일도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온 국민은 지금 권력과 감투를 외면한 채 몸을 던져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전력을 다할 정치인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국민에게 거짓말만하고 오직 사리와 파리,권력추구와 권모술수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인들은 백두산 호랑이의 밥이나 되었으면 시원하겠다.
오늘의 우리나라 형편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심각할 정도의 난국이요 위국이다. 위로는 식자층 중산층에서 밑으로는 광범한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누구를 만나도 한결같이 『큰일났다』 『나라가 이대로 지탱할 수 있을까』 『도대체 나라가 어디로 갈것인가』하는 불안스런 걱정과 함께 개탄과 분노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심하게 말해 어느것 하나 제대로 순항하고 정상가동되는 부분이 없다고 할 정도로 혼란 갈등 마찰과 정체가 뒤범벅되고 있다.
경제를 보면 물가 앙등과 부동산투기 과열과 함께 증권시장은 종합지수가 7백선이 무너지고 이어 6백선으로 곤두박질치는가 하면 수출부진 등으로 침체지경으로 접어들고 있다. 사회와 노동분야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파업에 들어간 현대중공업에 공권력이 투입된 후 쟁의가 진정되는가 싶었으나 주변업체들의 반발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메이데이까지 겹쳐 연대파업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으며 KBS사태는 보름이 넘게 파행방송이 지속되어 국민을 애태우게 했던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불만과 마찰과 갈등으로 들끊고 있는데 지금까지 거대여당인 민자당의 최고위원과 중진 국회의원이 현장에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가 수습에 나섰다는 얘기를 들어 본적이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책임과 궁금증은 노태우 대통령의 시국관과 리더십과 정치적 결단력 여부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노대통령은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30일 하오의 「경제상황 특별대책」 긴급지시를 보면 특유의 인내와 기다림의 노대통령도 비상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온 국민이 고대하고 있는 명쾌한 결단이다.
어느나라이건 난국은 언제든 맞게 마련이다. 문제는 난국을 극복하려는 최고 통치자와 정치지도자들의 희생적인 애국적 결단과 자세인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프랭클린ㆍ루스벨트대통령을 들수 있다. 1933년 경제공황 직후 취임한 그는 자신과 정부,특히 정치지도자들의 진실한 난국타개의지와 자세,그리고 이를 국민이 믿고 따르고 협조할 때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루스벨트는 취임다음날부터 각료 및 고위참모들과 휴일도 없이 1백일동안 대책회의를 갖고 하나하나 경제회복의 처방을 제시,종내 기념비적인 뉴딜정책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매주마다 유명한 로변담화식의 라디오방송으로 정책을 설명했으며 국민들은 대통령의 헌신적인 자세와 결단력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 결국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는 기틀을 다질수 있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적인 침체와 혼란은 나라를 선도해야 할 정치권의 무기력증 무책임성,특회 노정권과 거여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연초이래 어려운 국면이 증폭되고 또 예고 되었는데도 거여는 난국을 외면한채 정치생명을 끊는 폭탄선언이니 공작정치니 92년이후 대권밀약설 등으로 권력다툼과 놀이에만 몰두해 왔으니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볼것인가. 민자당의 자체여론조사에서 집권당으로선 건국이래 최저의 신뢰도(14%)의 지지를 기록한 것은 무책무위에 대한 자업자득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제 거여는 부질없는 당권싸움을 그치고 국민과 함께 난국에 대한 위기의식을 공감하며 비상한 자세로 나서야 한다. 먼저 노대통령은 결연한 의지로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난국타개국정쇄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비상시국에는 평상시와 같은 한가한 처방은 효과가 없는 법이다. 오늘의 각 부문의 마찰과 갈등은 돌발성이 아닌 예고된 것이어서 사전 예방,해결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안이한 자세로 지켜보다가 공권력에 의존하는 것은 통치권의 권위에도 문제가 된다. 공권력은 끈기있게 모든 노력을 다한뒤 국민도 용인할때 쓰는 비도ㆍ보도가 돼야한다.
다음으로 민자당의 껍질을 깨는 대오각성이다. 언제까지 정쟁과 권력다툼을 계속할 것인가. 또 그토록 내분과 싸움으로 국민에게 희망은 커녕 불안과 분노만 안겨 주었으면서도 지도층간의 밀의 밀담으로 덮는식이 더이상 지속돼서는 안된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그같은 태도를 버리지않는 한 정당 인기도에 있어 계속 바닥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의 호랑이는 주권자인 국민이다. 평소 국민은 말이 없다. 대다수 국민들은 불만과 아쉬움을 속으로 불태우지만 분노가 폭발할때는 걷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국민보다 두렵고 무서운게 어디있는가.
국민을 더이상 불안하게 하고 또 진노케 해서는 안된다. 지도자들은 백두산호랑이에게 물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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