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당독재 고수… 그동안 성과 압살우려동구변혁과 소련의 정치대개혁으로 진로설정에 고심해왔던 베트남은 소련과 동구모델보다는 결국 중국방식을 택했다.
86년부터 서기장으로 재직해온 구엔ㆍ반ㆍ린등 고령의 베트남지도자들은 공산화통일 15주년을 한달반여 앞두고 개최된 공산당중앙위총회를 통해 「최선」의 정치개혁이란 「죽은」정치개혁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베트남공산당 60년 역사상 가장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으며 또한 이례적으로 길었던 제6기 8차중앙위총회(3월12∼27일)는 세대교체와 정치개혁이 단행될 것이라던 일부의 예측과는 달리 보수파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었다.
보수파들의 일방적승리는 총회폐막성명과 당서열9위였던 개혁파정치국원 트란ㆍ수안ㆍ바크(65)의 축출로 확인된다. 중앙위총회성명은 동구변혁에 대해 『혼란의 배후에는 제국주의자들과 반동적인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베트남의 사회ㆍ경제적 위기는 당내부의 결속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국방과 안보문제에 더욱 역점을 두어야 하며 정치와 이데올로기 교육을 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수정당제는 부정되었으며 사회주의 노선견지가 재확인 되었다. 바크의 해임은 그가 지난해말부터 중병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진 린서기장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인물로 꼽혀 왔다는 점에서 충격적 이었다.
바크는 13명정원의 정치국원직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서기국원직과 중앙위원직에서도 축출됐다. 베트남 공산당 역사상 「자진 사퇴」가 아닌 「축출」 형식으로 물러난 정치국원은 그가 처음이라는 사실로도 정치개혁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지도부의 강력한 의사를 읽을수가 있다.
베트남전 휴전협상 당시 키신저의 상대역이었던 레ㆍ둑ㆍ토의 후원아래 승승장구,86년 정치국원에 임명됐던 바크도 1년전 까지는 보수파로 분류되었던 인물.
그러나 그의 자세는 정치국내 외무담당책임자가 되면서 급속도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동구공산권을 뒤흔든 혁명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그는 만일 베트남이 과거에 집착한다면 미래는 암담해질 것이라고 공공연히 발언하기 시작한 것.
그는 『복수정당제를 지지하는 민중의 의사를 억눌러서는 안될 것』이라며 다당제도입을 우회적으로 촉구했으며 당우위원칙을 폐기하고 입법부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치변혁없이 경제개혁을 추진하려는 전서기장의 노선을 「한다리가 길고 다른 한 다리가 짧으면 걸을 수 없는 법」이라는 비유로 공박했다.
바크의 해임은 잠재적 야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 단체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베트콩출신으로 구성된 호지민시(구 사이공시)의 한 단체가 첫번째로 도마위에 올랐다. 4천명회원의 이 단체는 다당제도입촉구까지는 가지 못한채 다만 『공산당이 좀더 민주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당국은 이 단체가 올해초 동구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개최했던 회의의 의사록 배포를 금지시킨데 이어 지도자 2명을 당에서 제명했다.
린서기장이 정치개혁 거부입장을 고수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동구와 소련과는 달리 가난한 베트남에서는 1당독재를 통한 정치적안정이 경제개혁을 성공시키는데 필수적 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치개혁 없는 경제개혁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마저 내세웠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경제분야에서는 개혁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앙위총회가 폐막된 직후인 지난 2일 베트남은 업무가 중복된 기존12개부처를 무역ㆍ문교ㆍ중공업부 등 3개 부처로 통폐합했다.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외에 당으로부터의 간섭도 줄이려는 계산이었다.
또한 부패척결에도 당지도부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관측통들은 정치개혁을 배제한 경제개혁이 큰 효력을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지난 3년동안의 「도이모이」(쇄신) 정책은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높은 이자율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잡았으며 암시장가격을 현실화,이중가격 구조도 철폐됐다.
그러나 다음단계의 개혁은 완고한 마르크시스트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다. 그것은 효율성이 없는 국영기업을 폐쇄하고 남겨놓은 국영기업도 독점적위치를 해소시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또한 당의 간섭을 완전 배제해야한다. 결국 정치개혁문제와 맞물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앙통제방식에 대한 당의 여전한 집착은 그간의 경제개혁의 성과마저 압살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번 중앙위총회에서 정치개혁에 등을 돌림으로써 세계은행과 IMF(국제통화기금)가 베트남에 차관을 제공하는데 대해 비토권을 행사해온 미국이 이를 철회하리라고 기대하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매년 15억달러에 달하는 경제원조를 해온 소련도 베트남에 대해 급속도로 흥미를 잃고 있다. 베트남과 관계가 개선되는 강대국은 오랜 분쟁상대국이었던 중국뿐이다. 하지만 중국은 베트남에 원조를 제공할 여력이 없다.
동구권변혁의 영향으로 바크와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 지식층이 늘어나고 있어 당지도자들이 내세우는 정치적 안정도 위협받을 소지가 크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볼때 베트남의 통일 15주년은 지도부에나 일반국민에나 극히 우울한 기념일이 될 것 같다.【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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