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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막걸리 반주/박승평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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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막걸리 반주/박승평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0.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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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막되어먹어서 그러지 앞머리에 「막」자가 붙은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막걸리와 막국수 막장에 족발이나 보쌈 비지 청국장 등은 어쩐지 허름하면서 딴은 실속이 있어 부담없는 우리 피붙이 음식들이다. 최근 쌀막걸리가 다시 나오고부터는 과음한 뒷날 해장술로 쌀막걸리 사발을 들이켜보는 재미도 꽤 삼삼하다.좋은 막걸리에는 네가지 맛이 어우러져 있다고 한다. 달고(감),시고(산),쓰고(고),떫은(삽) 맛이 그것인데 이들 서로 다른 맛들이 절묘하게 뒤섞여 독특한 감칠맛과 청량미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막걸리는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고 속이 출출해진 뒤라야 참맛이 난다고 일컫는 것도 그 시원함과 마신뒤의 포만감 때문인 것이다.

막걸리의 또다른 이름이 텁텁한 모양새를 묘사한 탁주이거나 농주 인 것은 예부터 땀흘리는 농부들이 애용하던 막술이었던 탓이다.

조선양조사는 막걸리가 중국에서 전래되어 대동강 일대에서 빚기 시작해 전국에 퍼져 민족의 고유주가 되었다고 밝힌다. 그런데 고려대부터 알려진 대표적 막걸리로 이화주가 있다. 옛날 누룩을 배꽃이 필 무렵에 만든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인데,그런뜻에서 꼽아보면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5월이 술담그기에 좋은 때가 된다. 하지만 가정집에서의 술담그기가 금지되어 허가 받은 양조장에서만 사시사철 담그고 있으니 그 좋은 이름도 이제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식량난 때문에 원조받은 밀가루로나마 지에밥을 지어 카바이드로 속성발효시킨 막걸리도 감지덕지 했던 우리들의 과거가 새삼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쌀막걸리가 아니라 황금막걸리가 나왔다한들 놀랄사람 하나없는 세태이다. 농촌 젊은이들도 맥주나 즐겨 찾고,거리엔 별의별 외국술이 지천으로 넘쳐 흘러 우리술은 그만 뒷전이다.

지금도 가끔 막걸리가 각광을 받기는 한다. 촌노들이 입맛을 바꿀 수 없어 여전히 찾고 있는 건 당연하다치고,높은 자리의 윗분들 잔치에 심심찮게 막걸리 사발이 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3공 시절의 박대통령은 애주가여서 평소 명산지의 막걸리를 즐겼고,대통령 선거때에는 밀짚모자에 막걸리 사발을 든 텁텁한 사진이 단단히 한 몫을 했던 것이다.

보통사람의 시대가 열려 취임파티에 마저 막걸리가 당당히 등장했던게 바로 엊그제 였다. 그런데도 6공정치 에서는 막걸리병만 보일뿐,시원한 그 감칠맛을 맛보았다는 사람들이 아직 없으니 문제라면 문제이다. 술맛이 없으면 세상살맛도 없어진다는게 주당들의 흔한 푸념이고 보면 현실에 실망한 많은 사람들의 오늘의 떫은 표정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런데도 주식시장이 최악의 폭락장세를 빚고 연대 노동투쟁이 심상찮은 「검은 목요일」에 우리 윗분들은 쌀막걸리 반주로 만찬을 들며 쪼가리 나려는 집안 꿰매기에 골몰했다는 소식이다.

과연 그 반주가 제맛이 났을지 궁금해진다. 뙤약볕에서 허리가 휘도록 땀흘려 일하고 난뒤라야 막걸리는 제맛이 나는 법인데,일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으니 그 대답도 불문가지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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