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개혁정책 후퇴우려/통독ㆍ군축 걸림돌 불원/정상회담 고지선점 헤게모니 유지의도【워싱턴=이재승특파원】 부시 미대통령이 리투아니아에 대한 소련의 탄압에 제재조치를 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천명,그동안 연기론과 취소론까지 나돌던 미소 무역회담이 25일부터 파리에서 개막됐다. 26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소련에 최혜국 대우를 부여하는 협정이 체결되면 소련은 경제 현대화에 필요한 첨단기술제품 및 지식을 도입하게돼 미국으로부터 큰 혜택을 받게된다.
부시대통령은 24일 상오 백악관 집무실에서 민주ㆍ공화 양당의회 지도자들과 연속회의를 가진 뒤 소련의 리투아니아 분리독립운동 탄압에 대해 『반발을 우려,현시점에서 제재를 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부시대통령은 미국이 제재하는 경우 소련이 전 세계에서 자유를 후퇴시킬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고 말하고 『현재로서는 소련을 응징할 생각이 없으며 만일 응징을 한다해도 경제분야가 될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관리들의 귀띔으로 부시대통령의 제재조치가 있을 것으로 보도했던 보도진들은 『부시대통령은 대화촉구의 조용한 외교를 펴기로 했다. 새로운 결정은 없다』는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의 발표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분리ㆍ독립문제는 리투아니아인들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명제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혁명적인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기폭제로 세계질서를 개편하려는 미ㆍ소 양국으로서는 건설적인 협력관계를 쌓아가는데 리투아니아의 독립문제가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에 일치한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미ㆍ소관계가 미ㆍ리투아니아 관계보다 미국의 국익에 훨씬 더 중요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솔직히 공언한 셈이다. 부시 행정부는 대고르바초프 협력체제 구축의 양해사항으로 동구 민주화운동에의 불간섭(브레즈네프 독트린포기)을 요구,소련의 적극적인 수용을 얻어냈다. 소련 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소수민족 공화국의 분리ㆍ독립 문제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특별한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소련 소수민족들의 유혈충돌과 분리독립운동 등으로 소수민족 문제가 미국 매스컴에 부각되면서 미ㆍ소간의 이슈가 됐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인들의 유혈충돌을 무력 진압한 것은 유혈방지의 명분 때문에 문제화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분리ㆍ독립운동은 민주화와 민족 독립의 두가지 요인으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충돌사건과는 전현 성격을 달리하게 됐다.
「도덕과 정의」의 편에선 미국 언론들은 리투아니아인들을 성원하고,모스크바 중앙정부의 탄압의 확대를 비판,부시 행정부의 대고르바초프 협력정책에 압력으로 작용해 왔다.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분리독립운동은 「소련제국 해체」의 시발로 풀이된다.
보수세력의 도전이 잠재하고 있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으로서는 현시점에서는 미국과의 화해를 희생하더라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시대통령의 「보복불가」결정은 냉철하고 현실적인 실리정책으로 평가된다.
부시행정부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미국의 민주화 가치관과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고 있어 미국에 유익하다』고 판단,이를 지지한다고 천명해 놓고 있다. 그들은 고르바초프체제 아래서 현안의 세계적 쌍무적 문제를 최대한 타결하려는 계산이다.
정치적으로는 통독과 유럽 질서개편 문제,군사적으로는 전략무기 감축회담(START),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군(유럽재래식 병력) 감축협상,화학무기 제한회담,핵실험 금지,또는 제한문제 등이 걸려 있다.
쌍무적으로는 무역 투자 등 경제협력과 시장경제화에 대한 제도적 기술지원 문제,가트(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세계은행(IBRD),국제통화기금(IMF) 등 서방 경제기구에의 가입문제 등이 있다.
부시ㆍ고르바초프 양정상은 한달 남짓앞둔 워싱턴회담에서 가시적인 협력의 상징이 필요하다.국가가 변혁기의 진통을 겪고있고,특히 소수민족의 독립성향으로 연방붕괴의 위험을 안고있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난국타결의 기대를 걸게할 수 있는 미ㆍ소합의가 필요하다. 부시대통령은 보다 여유있는 상황이나 그도 고르바초프에 필적하는 대담한 국제정치 포석으로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를 유지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리투아니아 문제는 미매스컴의 최대 이슈의 하나이지만 미ㆍ소간의 현안문제들을 압도할 비중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여론조사들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약 60%는 『리투아니아 문제가 미ㆍ소 화해를 저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소련이 무력 진압하더라도 미ㆍ소관계 개선은 지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토머스ㆍ폴리 하원의장은 『대통령이 신중히 처리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클레이본ㆍ펠 상원 외교위원장도 『회의 참석자들은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소련에 대한 미국의 대화 촉구는 리투아니아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 유럽 등 전세계가 리투아니아의 민족자결 열망을 존중하면서도 리투아니아를 승인한 나라는 아직 하나도 없다. 다행히 모스크바와 리투아니아가 다같이 협상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 된다면 부시의 이번 결정은 더욱 현명한 판단으로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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