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구국위 퇴진”연일시위지난해 12월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을 붕괴시켜 전세계 독재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루마니아의 정국이 5개월이 지나도록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금세기들어 가장 극적인 민중궐기였다는 찬탄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는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채 반목과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53년만에 처음으로 실시될 오는 5월20일의 자유선거를 한달 남짓 앞둔 26일 현재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집권 구국위원회(NSF)와 이온ㆍ일리에스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연 4일째 계속되고 있다.
25일에는 시위진압을 위한 경찰력 투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경찰총수인 몰도ㆍ베아누 장군이 직위 해제됐다. 이와함께 루마니아 전역에는 차우셰스쿠시대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던 세큐리타테(비밀경찰)가 구국위원회의 비호아래 되살아나 야당과 유권자를 상대로 선거공작을 펴고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얼핏 보기에 제2의 민중봉기가 일어날 듯한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피흘려 쟁취한 혁명이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이처럼 혼독속으로 빠져들게된 것은 무엇보다 구국위원회가 구체제 청산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된다.
차우셰스쿠체제에 순응하던 공산당 고위직 출신을 주축으로 구성된 구국위원회는 출범초부터 정통성을 의심받아 왔다. 곧 구국위원회의 과도 정권장악은 다원주의와 민족주의에 입각한 민주정부수립을 열망하던 루마니아 민중의 의사에 정면 배치되는 공산당 및 군부내 친소개혁파의 쿠데타로 간주돼 왔다.
구국위원회의 속셈이 민중의 희생을 대가로 얻어낸 혁명의 열매를 가로채 정권을 잡으려는데 있다는 루마니아인들의 의혹은 그간 국구위원회가 취해온 어정쩡한 태도로 인해 더욱 굳어져가고 있다.
지난해 성탄절을 기해 차우셰스쿠 부부를 전격 처형한 구국위원회 지도부는 이어 재빨리 사형제도 폐지를 발표했다. 이같은 조치는 구국위원회의 의도가 일부 차우셰스쿠 측근 세력의 제거라는 「화려한 전과」를 통해 자신들의 과거비리를 은폐하고 정권을 장악하려는데 있다는 강한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격렬한 반대 시위에 직면한 구국위원회는 공산당 불법화 방침과 다당제 도입ㆍ사유재산 인정 등 일련의 민심수습 정책을 발표했지만 정통성 자체를 의심받는터라 이 또한 여론무마용의 겉치레 개혁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았을 뿐이다.
3백만 당원을 과시하던 루마니아 공산당은 일단 외형적으로는 해체 됐지만 구공산당원들이 여전히 관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4만여명에 달했던 비밀경찰도 극소수 고위간부만이 처벌 받았을 뿐,야당과 막 태동하기 시작한 자유노조에 대한 탄압 등 선거를 앞두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78년 미국으로 망명한 전비밀경찰 총수 이온ㆍ파체파도 과거 동료들과의 접촉결과를 근거로 『차우셰스쿠 처형후 숙청된 비밀경찰은 3천7백명에 불과하다』고 밝혔을 정도다.
현재 구국위원회가 국민으로부터 받고있는 불신의 정도는 4월26일자 파리마치지가 조사보도한 여론조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응답자의 30%만이 현 집권 구국위원회의 조치에 찬성을 하고 있다. 특히 이온ㆍ일리에스쿠 대통령에 대한 신임도는 20%에 불과하다.
주목되는 것은 응답자의 61%가 자유주의 경제체제를,60%가 다당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원하며 85%가 경제개발을 위해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사회주의 노선을 답습하면서 제한된 개혁을 취하려는 구국위원회의 지도노선에 대한 루마니아 국민들의 명백한 불신으로 풀이할 수 있다.
서방 관측통들은 그러나 현재 루마니아에 구국위원회를 견제할 이렇다할 야당세력이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차우셰스쿠 몰락후 9백여개가 넘는 신문이 창간되고 70개 이상의 정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구국위원회의 견제세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이중 주요 야당인 농민당과 자유당도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있는 루마니아 국민들의 정치적 욕구와 기대수준을 수용하기에는 자금과 조직역량,그리고 정치이념에서 시대의 요청에 뒤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인 경제ㆍ행정 문제보다는 언론ㆍ출판의 자유 등 헌법상 권리와 구공산당 잔재의 척결을 우선 부르짖고 있는 학생과 지식인 계층 및 소장파 군장교들의 불만은 해소방법을 찾지못한 채 일촉즉발의 상태로 내연 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구국위원회가 미카엘 루마니아 전국왕의 환국을 저지한것도 미카엘 국왕이 정권유지에 현실적인 위협이 될 수는 없어도 자칫 제2의 민중봉기에 불을 당기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고 볼 수 있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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