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밀약설/황소웅 편집부국장(메아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밀약설/황소웅 편집부국장(메아리)

입력
1990.04.25 00:00
0 0

1955년 일본의 민주당과 자유당이 합당하여 자유민주당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고비가 당권문제였다. 1년전인 54년 총재 선출문제에 부딪쳐 보수신당결성이 실패한 경험을 살려 민주의 미키(삼목무부) 간사장과 자유의 오노(대야반목) 총무회장은 55년5월,10여 차례 접촉하면서 면밀한 시나리오를 작성,6월에는 하도야마(구산) 오가타(서방) 양당수간의 회담으로 까지 급진전시킨다. 그러나 양당간의 마지막 협상에서 당권문제가 최대의 난관으로 떠올랐다. 양당은 우선 절충안으로 4명의 총재대행위원제를 실시하고 새해봄에 당수를 선출하기로 합의한다. 이때 항간에는 수뇌부들끼리 밀약이 있었다는 설이 분분했지만 그 당시 당사자들은 이를 모두 부인했다.그러나 후일 수상이 된 기시(안신개)는 밀약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보수신당의 초대총재는 민주의 하도야마가,그 다음은 자유의 오가타가 맡되 그 시기는 미키가 조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밀약은 다음해 1월 오가타가 급서함으로써 소용이 없게 되었고 4월에는 순조롭게 하도야마를 총재로 뽑음으로써 당권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미키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러한 일본 자민당을 이름까지 닮았다는 우리 민자당이 초창기부터 당권을 둘러싼 밀약설로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는게 흥미롭다.

수개월전 합당 당시에는 노태우대통령의 뒤를 이어 김영삼최고위원이 여당의 다음 총재가 되고 이어서 김종필최고위원이 다음 주자로 나서기로 밀약했다는 등의 얘기가 파다했었다. 그리고 앞으로 수년간은 노대통령이 정부를,김영삼위원이 대표 최고위원으로 민자당을 맡기로 했다는 얘기도 나돌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밀약설이 나올 때마다 당사자들은 번번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무슨 약속이 틀림없이 있었으리라는 의혹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번 민자당의 내분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박철언의원은 김영삼위원을 공격하면서 『합당비사를 밝히면 김위원이 곤란하게 될것』이라고 알쏭달쏭한 여운을 남김으로써 밀약설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환기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위원쪽에서 측근 참모들의 입을 통해 「92년 총선후 김위원이 총재를 맡는다」는 합의 각서가 1노2김 간에 있었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나서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민주계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민정계는 「있을 수 없는일」이라고 합의각서설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으며 「당분간 아무말 않겠다」는 공화계의 반응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처럼 당사자들간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고 멍할 뿐이다.

일본 자민당의 경우를 들추지 않더라도 밀약이 있었다면 언젠가는 밝혀지고 마는 법이고 또 밝혀지든 안밝혀지든 밀약이 지켜진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정치란 몇몇 정치 지도자들이 비밀리에 짠 각본에 따라 이뤄지는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그때 그때 선택하기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