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기식 관리방식 한계에/오름세 동시다발… 공공요금 억제도 실효없어/통화증발없이 구조조정 통한 성장책 펼쳐야최근의 물가동향은 정부가 그동안 애용해 오던 누르기식 물가관리 방식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서슬 퍼렇게 물가통제를 외치고 있어도 가파른 물가 오름세는 여기 저기서 동시다발로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15일까지의 소비자물가상승률 중에서 이미 두자리수를 돌파한 품목들을 보면 정부미 12.1%,돼지고기 44.0%,김 13.7%,학교납입금 10.1%,시내전화 14.8%,가정부 임금 22.4%,주산학원비 10.5%등 7가지다.
두자리수 품목들이 1,2건에 그쳤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렇듯 여러 품목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터지자 정부당국으로서도 속수무책이다. 이 품목중에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아래 있는 공공요금이 두가지나 있음을 봐도 정부억제력의 한계를 금방 알 수 있다.
물가주관부처인 경제기획원 실무자들의 입에서 이미 올해 연초부터 『두손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푸념이 실토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정부의 누르기식 물가관리의 한계를 말해주고 있다.
정부의 상투적인 수단인 공공요금의 인상억제는 물가상승 압력의 해소가 아니라 단지 인상시기의 지연에 불과할 뿐이었다.
한해,두해는 어떻게 억지로라도 버티며 넘어갈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한꺼번에 올리게 돼 물가상승률의 기복을 더욱 심하게 만들어 부담을 가중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물가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겠다고 밝혀 다른 일반요금들도 자제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우편요금의 경우 지난 86년 14.3%가 오른 이후 3년간 한번도 오르지 않았다. 이러한 동결이 그동안의 물가관리엔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겠지만 적자가 갈수록 누적돼 조만간 제1종 우편의 경우 종전 80원에서 1백원으로 25%를 올려야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래도 우편요금의 원가보전율은 종전 57.7%에서 66.6%로 다소 나아질뿐 해소되는 건 아니라고 체신부는 밝히고 있다.
정부의 공공요금 관리는 막대한 흑자를 보고 있는 부문의 가격조정에서도 유연성을 잃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전의 경우 다음달부터 산업용 전기료를 5% 인하하겠다고 밝혔으나 지난해 세금을 다 내고 난후의 당기 순이익이 7천6백61억원에 달해 그 이상의 인하 여력이 있다는 것. 한전은 순이익을 국민주 보급에 따른 배당부담,새로운 발전설비의 확충등을 내세워 사내 유보키로 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시설확충 자금은 외채 등으로 조달하고 이 순이익은 최대한 물가인하에 충당하는 게 국민경제를 위해 훨씬 건설적인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기통신공사도 마찬가지다. 전기통신공사는 다음달부터 전화기본 요금을 월 3천원에서 2천5백원으로 내리는등 인하조치를 취했으나 이는 올해부터 시행된 시분제에 따른 실질적 인상분을 상쇄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기통신공사의 지난해 세후 순이익 3천1백6억원(전년대비 87.6% 증가)이 물가인하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일 발표된 정부의 물가안정대책중엔 최근의 물가불안을 야기한 근본원인으로 ▲최근 몇년간 계속된 높은 임금인상과 농산물 수매가 인상이 원가상승과 소비수요증가 압력으로 작용했으며 ▲부동산 가격상승과 이에따른 전ㆍ월세값의 상승이 물가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어서 구체적 원인이 열거돼 있지만 어디에도 돈 얘기는 없다. 시중에 방만하게 풀린 돈이 물가를 비상케 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 별 이의없이 인정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돈 얘기가 빠져 있는 것이다.
이는 정부당국 나름대로 분석ㆍ진단한 결과 「돈」이 아직 구체적 상승요인이 아닌 것으로 나온 탓일수도 있으나 기실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현 경제팀의 의도적 외면인 쪽이 맞을 것이다.
핵심적인 원래 이유는 감추고 부차적인 요인들만으로 최근의 물가불안을 분석하게 되면 대책 역시 대증적인 수준에 머물게 마련이다.
시중에 풍성한 돈을 그대로 둔채 물가관리가 계속될 경우 그 결과는 마치 바람든 고무풍선을 위에서 눌러 물속으로 집어 넣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고만 잔뜩 들인채 효험은 보지 못할 것이라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누르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유가 사회전반에 퍼진 물가 오름세 심리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인 괴잉통화를 제거하지 않은 채 위압적인 누르기만 계속돼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얘기다.
통화를 풀어 경제성장을 촉발하겠다는 방법론은 이미 학계나 선진국의 정책당국에 의해 물가상승만 유발하고 실질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대세를 이루고 있는 흐름은 통화를 풀지않고 그대로 유지하며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성장을 촉발하고 물가는 안정시키는 방식이다.
「통화방출→성장 촉발→물가상승→실질성장제도」라는 방식이 「적정통화유지→구조조정→성장촉발,물가안정」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정책당국이 시각을 새롭게 할때 물가대책은 겉돌지 않을 것이다.【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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