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통화 출구 못찾고 투기로/부동산값 오르니 임대료 뛰고 다시 다시 상품값에 반영/과소비도 한몫… 정부 「성장우선」위해 흡수 “속수무책”최근 물가상승의 특징은 모든 가격결정 주체들이 너나없이 값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기에 나름대로의 이유가 붙어있다. 집을 세주고 있는 사람은 전세값을 올리면서 『집값이 너무 올라서』라고 밝히고 있고 설렁탕 값을 올려받는 음식점 아주머니는 『가게세가 너무 올라 도리가 없다』며 이해를 구한다.
동네골목길의 과일가게 아저씨는 『도매시장에서 워낙 비싸게 사오기 때문에 종전 대로 받다간 이문은 커녕 손에 보는 장사가 된다』며 도리어 하소연이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유대기도 제 각각이지만 거기엔 『남들이 올리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는게 기본적인 공통점이다.
사회전반적으로 인플레 기대심리가 꽉 들어차 있는 것이다.
물가움직임이 이와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데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시중에 풍성하게 풀린 돈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들이 있지만 결국엔 돈 문제라는 얘기다.
시중에 지나치게 풀린 돈이 전반적인 물가 급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아직 정밀하게 분석돼 있지 않지만 대략적인 추적은 가능하다.
최근의 물가급등과 관련,시중의 풍성한 돈이 맨먼저 한 일은 부동산투기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지난 86년 이후의 흑자기조 속에서 기업과 가계에 쌓여온 돈들은 새로운 기술개발이나 설비투자등을 위해 생산부문에서 제대로 흡수해 주지 못하자 고수익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지난해초부터 북방열기를 타고 부동산투기 바람을 서서히 일으켰다.
이 부동산투기바람은 지나는 곳마다 땅값 급등을 통해 순식간에 가담자들에게 엄청난 고수익을 안겨주면서 여유자금뿐 아니라 기업의 생산자금마저도 끌어당기는 모습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상반기 중에 자금이 생산부문을 떠나 투기부문으로 쏠리는 자금 흐름의 왜곡구조가 더욱 강화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상태에서 정부는 경제가 기울어가는 기미를 도처에서 보이자 하반기들어 경기부양 명목으로 돈을 추가로 풀어 시중돈의 양을 더욱 풍성하게 해줬고 이때 풀려난 돈들은 경기부양보다는 투기열기를 더욱 조장,1년 넘게 부동산투기바람을 지속시키고 있다.
과잉통화에 의해 유발된 부동산가격 급등은 그 자체로 물가지수에 잡히지 않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물가 상승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먼저 직접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전ㆍ월세값의 상승이다. 상품(주택)의 가격이 올랐으므로 그 이용료(전ㆍ월세)도 따라 올라가는 건 당연한 현상. 지난 2월의 전세값 파동은 이런 맥락에서 이미 예고됐던 것이기도 했다.
부동산가격 급등은 또한 상가 임대료를 올려 상가에 세들어 장사하는 업종의 상품가격도 올린다. 설렁탕 자장면 이발료 커피값 등이 이런 요인에 의해서도 오른다.
부동산투기가 이처럼 물가에 가시적인 영향이 미치는 선에서 작용을 멈춘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실제적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간접적 영향이 더욱 강하게 계속된다.
가계에는 과소비풍조를 더욱 조장한다. 손쉽게 벌 수 있는 소득의 존재를 씀씀이도 헤프게 만들어 물가상승을 자연스럽게 부채질하고 기업편에선 생산적투자의 위축으로 장기적으로는 공급능력의 상대적 축소를 초래,물가상승 요인으로 다시 작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요인들이 겹쳐 결과적으로 인플레 기대심리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 것이다.
물가상승을 초래하는 요인으로는 시중돈의 풍성함 외에도 임금인상과 환율변동이 거론되고 있다.
임금인상의 경우 원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상품가격을 올리게 된다는 지적이다. 최근의 물가불안은 지난 87∼89년간 계속된 두자리수 임금인상도 일정한 작용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상품원가 중 노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88년의 경우 9.9%이므로 임금이 그해 평균 19.6% 올랐으면 제조원가가 2%가량의 상승요인을 안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환율도 절하되면 수입물가가 오르게되므로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실제로 한은의 한 분석에 따르면 국내 물가는 돈이 시중에 풍성하게 풀려 있는 상태에서 임금인상 수입물가상승등 비용상승요인이 겹쳐 발생할때 크게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70년대 중반과 후반의 물가상승기에서 그대로 확인됐으며 올해의 경우에도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분석돼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됐다.
결과적으로 최근의 물가상승 움직임을 과잉통화와 비용상승요인의 복합작용으로 빚어지고 있는 구조적인 현상인 셈이다. 그리고 그 원인의 제공자는 물건값을 올리는 각 경제 주체가 아니라 바로 정부당국이다.
비용상승 요인에 대해 정부는 물가대책 차원에서가 아니라 기업의 가격경쟁력 확보라는 차원에서 한자리수 임금인상을 내걸어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과잉통화 문제에 대해선 총통화 증가율이 23∼24%대에 이르고 있는데도 성장우선이라는 지배적 분위기 때문에 속수무책인 상태다.【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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