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사물을 보는 시각에 낙관론과 비관론이 있다. 가령 마시다 반쯤 남긴 술병을 보고 낙관론자는 『아직도 술이 반이나 남았다』고 흐믓하게 여긴다. 거기에 반해 비관론자는 『벌써 반이나 마셔 버렸다』고 아쉬워한다.최근 우리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낙관론자는 민주화로 가는 과도기이므로 멀지 않아 모든 것이 안정되고 그간의 갈등과 어려움도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겪는 진통쯤으로 생각할는지 모른다. 하나 비관론자는 물가앙등,부동산투기,민생치안의 부재등 위기감때문에 이나라,우리사회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몹시 불안해 하고 있다.
한때 우리국민들은 국민소득이 5천달러를 넘으면 장차 일본식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장미빛 청사진에 들뜨기도 했다. 그와 반대로 격심한 노사분규,과소비,수출부진,인플레,사회불안 때문에 남미형 국가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소리도 없지 않았다.
한데 요즘 우리사회의 양태는 바로 남미형으로 가는 한 단면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
우선 우려되는 현상은 경제파탄의 조짐이다. 아마도 요새 장바구니 물가고를 피부로 느끼지 않은 서민이 없을 것이다. 돈만원을 헐어도 시장에서 살 것이 별게 없는 세상이 되었다. 임금이 올랐다고 하지만 물가가 앞질러 치솟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전세ㆍ사글세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아파트ㆍ부동산값은 개발지가 아니더라도 1년전에 비해 거의 2배로 껑충뛰었다. 선량한 샐러리맨들이 아무리 노력하고 절약해서 저축해도 내집 마련의 엄두를 내지 못하게끔 되었다.
정부는 실명제가 제악의 근원인 것처럼 홍보해서 그 실시를 미루고 경제각료를 몽땅 경질했다. 하지만 한번 오른 부동산값,전ㆍ월세는 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증시부양책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본들 그돈은 증권가에서 빠져나가 부동산투기로 몰려간다. 기관투자가는 미리 재미를 본뒤 달아나고 애꿎은 소액영세 투자자들만 「닭쫓는 개」 신세가 되고 있다. 4천만 국민간에 투기바람이 거세게 불어 투기할 돈을 못가진자만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부동산투기를 막겠다고 검찰이 형사처벌 법규정을 찾아 헤매고 국세청이 제아무리 세무사찰을 한다고 엄포를 떨어도 막무가내가 된지 오래다.
사회현상은 어떤가. 검찰총장,치안총수가 민생치안의 확보를 슬로건으로 내걸어 큰소리를 쳐도 효과는 별로 없어 보인다.
흉악범 9명을 집단으로 처형시켰으나 강력사건의 예비범들에게 얼마만큼 경고가 되었는지 알수도 없다. 본디 모든 범죄 발생은 범인 개개인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사회제도 기풍의 잘못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는 법이다.
우리사회가 이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굴러가게 한 책임은 무엇보다고 정치에 있다. 대구서갑과 진천ㆍ음성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 매수,폭력은 해방 45년이 된 오늘의 정치가 오히려 후퇴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국회가 고발과 수사의뢰의 권한밖에 못가진 선거관리 위원회에 부정선거의 모든 책임이 있는 양 몰아붙이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선거과정에 부정혐의가 있으면 검찰,경찰이 왜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돈봉투를 못 받았다고 뒤늦게 통장집에 몰려가 항의하는 것은 또 무슨 꼴인가. 이러고서도 「주권재민」을 자부할 수 있을는지,창피하기만 하다. 모든 책임을 우리 민도로 돌려 자위하란 것인가.
집권여당의 최고위원이 공작정치.정보정치의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뒤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는 것도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여당 최고 간부가 공작정치 동태감시의 대상이라면 야당사람들의 처지는 짐작되고도 남지 않은가.
정무장관 한 사람이 인책 사임했다고 해서 국민들에게 어떤 설득력을 가질 것인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대통령 중심제인 우리정치 체제아래서 모든 국정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정부여당의 국정운영이 잘못되었으면 의당 대통령이 국민에게 이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며 시정해가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른바 「보수대연합」으로 3당을 통합할 때의 대의명분은 민주ㆍ번영ㆍ통일을 표방한 것으로 기억된다. 거대여당의 출현으로 정치적 안정을 이룩해서 민생고를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감때문에 3당통합을 지지했던 국민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달이 못되어 국민앞에 드러낸 권력싸움,파워게임의 양상은 추잡하기만 했다.
섣불리 배운 민주주의 이론때문에 강력한 정부와 민주주의는 서로 대립하고 모순된 개념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통치시키는 기술,다시 말해 통치할 수 있는 강력한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국민이 갖는데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와 실행력이 있는 강력한 정부를 갖는 것은 완전히 양립되는 것이다. 정부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정치권력의 제1차적 의무는 정치ㆍ사회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즉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다.
흔히 우수한 교사는 가르치며 배우고 현명한 통치자는 다스리며 따라간다고 한다. 집권기반의 구축은 산만한 인기에 의존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인기는 풍문하나만으로 조변석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서경은 『하늘은 민중의 눈으로 보며 민중의 귀로 듣는다』 (천시자아민시 천청자아민청)고 했다.
안이한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소신있는 통치는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인가. 5공치적 가운데 유일하게 평가되는 점은 한자리 물가를 유지한데 있었다고들 한다. 이런 난국위기일수록 최고통치권자는 직접 나서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오늘의 경제난ㆍ민생문제를 국민과 함께 걱정하고 한가지씩이라도 풀어가야할 책무가 있다. 국정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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