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성폭력(고삐없는 10대의 성:4)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성폭력(고삐없는 10대의 성:4)

입력
1990.04.23 00:00
0 0

◎순간충동이 「가정파괴」로까지/때·장소 안가리고 추행·강간/작년 성범죄 35%가 “10대 짓”/강도짓 절반이 폭행도,딸가진 부모 근심/주부들 “10대와 함꼐 승강기 타면 공포”강도강간혐의로 징역 단기5년에 장기6년을 선고받고 인천소년교도소에 수감중인 권모군(19·광주)의 경우.

중학교에 다닐때까지만해도 전교10등안에 드는 모범생으로 집안의 기대를 모았던 권군이 교실이 아닌 시멘트바닥에서 2년째 꿈을 앗긴생활을 하게된 경위를 직접 들어보았다.

『시골에서 광주의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혼자 떨어져 살면서 우선 외로웠다. 급우들이 모두 여자친구가 있다며 만화책에서 본것같은 얘기를 자랑스럽게하는데 나혼자만 아무것도 모르는 외톨이인것 같았다. 갑자기 내가 너무 왜소해지는것처럼 느껴졌다. 나쁜 친구들인지도 모르고 사귀게 됐다. 2학년때인 88년 5월 친구8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거리에 나왔는데 돈이 없었다. 친구가 「밤12시가 넘어다니는 여자는 모두 술집여자라 건드려도 괜찮다」면서 지나가는 20대여자 1명을 위협해 골목길로 끌고갔다. 친구들이 먼저 그짓을 했고 나도 안할수가 없었다.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그과정이 너무 손쉬웠다』

권군의 행동은 점차 대담해져갔다. 그의 마지막 범행은 가정파괴범이었다. 그로부터 보름후 광주서구 정모씨(48·여)집에 친구2명과 함께 복면을 하고 들어가 두딸(18·21세)등 3명을 식칼로 위협하고 60만원을 턴후 큰딸을 가족앞에서 성폭행했다.

권군은 불과 보름만에 6차례 강도·강간을 했다.

권군의 범죄행위는 살인을 빼고는 10대성범죄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요소를 대부분 보여준다.

음란만화등으로부터 비뚤어진 성을 배우고 불량친구들과 어울리며 계획적이고 치밀한 범의없이 순간적충동으로 범죄의 세계에 자신도 모르게 발을들여놓는 것이다. 그리고 1회성으로 끝나지않고 재범을 하며 강간에서 강도·강간으로,가정파괴범으로 점차 치닫는 것이다.

날로 늘어가는 10대범죄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성범죄이다. 법무부의 89년 범죄백서에 의하면 강간사건의 경우 19세 이하가 전체의 34.9%(20대는 40%)를 차지 했으나 살인은 18.9%(20대는 44.6%)로서 강력범죄중 강간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았다.

연도별 추이를 보면 14세이상 20세 미만의 전체소년범죄는 89년 한해동안 88년에 비해 16%가 증가했으나 강간·강제추행등 성범죄는 같은기간 무려 31.6%가 늘어났다.

굳이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10대들의 성범죄는 모든 시민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고교생과 엘리베이터를 단둘이 탔을때 많은 가정주부들이 위협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호젓한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데이트를 하는 청춘남녀들에게도 10대들의 출현은 이제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져 몸을 움츠리게 한다.

『아파트단지에 너무 흉흉한 얘기가 많이 나돌아 자나깨나 딸 걱정』이라는 주부정모씨(35·서울강남구대치동)의 얘기는 최근에 모든 부모가 악몽처럼 시달리는 걱정거리이다.

탈선으로 이어지는 이성교제,각성제·환각제의 복용,홍수같은 성적공해등에 탐닉하거나 노출됨으로써 더욱가속화되는 10대들의 성범죄는 강도·강간에서 이제는 살인도 서슴지 않는 최후의 범죄 양상으로까지 변해가고 있다.

지난8일 새벽 부산 낙동강변에서 발생한 10대들의 여공 집단성폭행및 살인미수사건은 10대들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하는 허망함까지 들게한다.

이사건의 수사관들에게 의하면 고교생3명이 낀 10대5명은 범죄를 숨기기위해 10대여공을 강에밀어 죽이려 하기전에 『기왕 죽일건데 한번만 더하자』며 수차례 집단폭행했다. 강둑으로 헤엄쳐나오던 피해자를 다시 막대기로 강물에 밀어넣은 이들은 집에서 태연히 잠을자다 검거됐다.

구속된 김모군(18·B공고3)은 『만화가게에서 충격적인 남녀관계를 본후 머리속에 항상 그 장면이 어른거렸다』고 경찰에서 고백했고 『그렇게 큰죄가 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유복한 가정의 아들인 서모군(15·당시D중3)이 국민학교 화장실에서 여자어린이를 강간하고 살해한 것도 충격적이었다.

서울 서초경찰서의 한수사관은 『10대강도사건의 뒤에는 피해자들이 꺼려 말은 않지만 절반가량은 성폭행이었다는게 경험적 결론』이라며 『강도와 강간중 어느것이 목적인지 가리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실상을 전했다.

『살인으로 이어질까봐 지레겁이나 반자발적으로 몸을 맡겼다는 피해자도 있었다』는 이 수사관의 얘기는 무서운 10대들 때문에 빚어진 우리사회의 비극이다.<14면에 계속>

◎죄의식마비… 처음엔“재미삼아”/「눈총」아랑곳없이 욕구발산

집단서 소외안되려 공범 되기도/부유층 유흥에 반발심리도 한몫

<15면에서 계속>

10대의 성범죄가 얼마나 충동적이고 즉흥적인지 다음 두사례가 말해준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는 부유층가정의 김모군(16·I공고1)등 중학동창 5명은 지난달 3일 하오8시30분께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옆자리의 대학생남녀가 엷은 커튼속에서 자극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본 김군은 지난해 말부터 사귀어 오던 중학후배 심모양(14)을 불러 내자고 제의했다. 이들은 전화를 받고 나온 심양을 부근에 있는 반포공원으로 데리고 가 술을 먹인뒤 차례로 폭행했다.

김군은 폭행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망을 봤다. 중학을 마친후 2년째 목수일을 배우고 있던 오모군(18·서울서초구방배2동)은 지난달 28일 밤11시30분께 술을 마시러 사당동 D레스토랑에 갔다.

역시 혼자남아있던 이모양(17)을 본 오군은 다짜고짜 이양에게 다가가 주위에 손님10여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잠깐 할말이 있으니 따라오라』며 레스토랑내실로 데리고가 폭행했다.

이들은 경찰에서 한결같이 『돈도없고 순간적인 성충동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우발성외에도 10대성범죄의 특성은 집단적성향에 있다. 심지어는 집단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공범이 되기도 한다.

지난달 2일밤 10시 집에서 공부하던 박모군(16·K고2)은 갑자기 찾아온 친구 이모군(16)을 따라 집부근인 관악구 신림10동 S국교 뒷산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친구9명이 각각 세패로 나뉘어 여중생3명을 성폭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30여분전에 근처 문방구에서 나오던 이모양(15)등 여중생3명을 위협해 끌고갔다.

박군은 잠시 당혹스럽기도 했으나 친구들에게 가담했다. 박군을 불러낸 이군은 경찰서에서 『의리를 지키기 위해』라고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했고 박군은 『나혼자 따돌림 받기 싫어서』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성적이 상위권이며 박군은 반장까지 한 모범생이었다.

성범죄를 저지른 10대 소년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여학생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아버지가 부동산 재벌인 채모군(19·Y고3)은 『아버지의 승용차를 몰고 나가면 굳이 범죄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밤에 서초동 디스코택에 가면 2차를 가고싶어하는 여학생들이 얼마든지 많았다』고 실토했다.

채군은 지난달 강간미수로 구속됐다. 채군과 같은 일부부유층자녀들의 사치스런 유흥행각은 감수성이 예민한10대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줘 범죄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할 우려가 크다.

선도가 가능한 비행청소년을 사회내에서 교화하는게 목적인 서울보호관찰소(소장 강지원검사)의 수강명령프로그램의 하나인 「푸른교실」은 지난해 12월말부터 남녀청소년을 분리교육하고 있다.

이유는 이들 10대 남녀들이 「성폭행」을 주제로한 토론에서 큰 입장차이를 보였기 때문.

이토론에서 김모군(17)은 『성폭행의 책임은 여자에게 더 많다.남자가 술을 먹자거나 으슥한곳에 가자고 할때 따라오는 여자가 더 잘못이다』라고 주장하자 송모양(16·K여중)은 『여자들은 그냥순수한 마음에서 따라갈뿐인데 남자들이 공격적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하다 싸움으로 번졌었다.

강소장은 『10대들은 남녀할것없이 순간적 유혹을 이겨내는 자제력이 부족한것이 가장 큰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자녀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끊임없는 대화만이 비행과 범죄에 빠지지 않게하는 최선의 방법일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소년전문가들은 『각종성공해물로부터 굴절된 성을 간접체험하는 10대들은 그것이 곧 현실세계의 일인양 받아들이는 데 심각성이 있다』면서 학교와 가정에서 보다 현실적인 성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별취재반

▲사회부=한기봉 신윤석 장병욱 홍윤오 고재학기자

▲사진부=오대근 최종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