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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공해(고삐없는 10대의 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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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공해(고삐없는 10대의 성:3)

입력
1990.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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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교생 가방속에도 도색잡지/비디오­만화등 음란퇴폐물 “홍수”/학교앞 서점서도 내놓고 팔아/몰래보다 들킨 남고생 수치심 자살도/성충동 오도… 추행·강간등 성범죄로지난6일 하오7시께 서울 성북구 정릉1동 김모씨(32·여)집 지하실방에서 김씨의 조카 서모군(15·H고1)이 벽에 박힌 못에 전기줄로 목을매 자살했다.

고교1년생의 목숨을 끊게한것은 성적비관도 인생무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한권의 도색잡지였다.

시골에서 정미소를 경영하는 부모밑에서 중학교를 마친 서군은 지난해말 서울로 유학와 이모인 김씨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김씨는 이날 하오4시30분께 조카가 귀가한 후에도 인사도없고 기척도없자 서군의 지하공부방에 내려갔다.

김씨가 방문을 여는순간 서군은 깜짝 놀라며 읽던 책을 책상밑에 감췄다. 김씨가 책을 뺏어보니 「국어」라고 쓰인 책표지 안쪽에는 「황홀한 사춘기」라는 제목과 함께 남녀고교생이 연출하는 온갖 기묘하고 변태적인 성관계를 묘사한 컬러사진과 글이 가득차있었다.

김씨는 당황했지만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이런 책은 공부에 방해가된다』고 꾸짖고는 돌아갔다.

그로부터 2시간뒤 서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치심 때문이다. 반에서 7∼8등의 성적을 유지하던 서군은 쾌활한 모범생이었다.

서군을 목매게한 「황홀한사춘기」의 서문에는 『사춘기청소년의 잘못된 성관념을 올바르게 지도하기 위해 이책을 발간한다』고 써있었다.

매우 극단적인 사례일지 모르지만 이시대의 수많은 청소년들이 음란퇴폐성 저질간행물·광고등 온갖 성공해물의 홍수속에 휩쓸려 병들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충동적이며 유혹에 약한 10대들은 음란퇴폐물속에서 비뚤어진 성을 배운다.

청소년문제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이같은 음란퇴폐물의 범람이다. 음란퇴폐물의 장면은 10대들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어 그들의 사춘기를 괴롭히며 그들은 꿈속에서 또는 현실에서 만화속의 주인공이되기도 한다.

오도된 성충동은 추행 강간등 성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각종 범죄의 근원을 이룬다.

10대를 유혹하는 성공해는 일본것을 그대로 복사한 음란만화,비디오테이프,저질정기간행물이나 단행본,외국도색잡지,성인영화,온갖 성적인 광고들이다. 여고생의 가방속에서는 물론,심지어 조숙한 국민학생의 가방속에서도 발견돼 선생님들의 큰 고민이 될만큼 널리 퍼져있다.

지난 17일 하오6시께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 2층의 한 비디오가게앞을 교련복 차림의 고교생3명이 지나가자 가게앞에 나와있던 20대청년 2명이 『좋은게 있다』면서 취재기자까지 함께 반강제적으로 가게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가게앞에는 테이프대여판매와 함께 기구 링 칙칙이 흥분제판매라는 낯뜨거운 입간판이 버젓이 놓여있었다. 같은업소 20여개가 몰린 상가안에는 온갖 선정적인 비디오테이프가 가득차 있었고 고교생들은 아무말 없이 테이프를 골랐다.

음란물은 청계천3가를 비롯해 영등포역앞 종로5가 청량리등에 집중돼있고 은밀한 지하녹음소와 인쇄소등을 통해 점조직으로 전국에 유통돼 당국의 단속을 피하고 있다.

비디오업자들에 의하면 음란테이프는 전국적으로 3백50만개가 유통돼 국내 전체비디오테이프 물량의 80%가량이 된다.

음란물은 만화가게 숙박업소는 물론 가두판매 서점판매등에 의해 청소년들에게 퍼진다. 학교앞도 예외는 아니다.

17일 하오 서울 성동구 행당동 H여중앞 D서점에는 「부부라이프」 「포토스캔들」등 포르노성잡지가 잔뜩 진열된 가운데 여학생들이 부지런히 책을 고르고 있었다.

지난해 서울YMCA 설문조사에 의하면 음란물을 본뒤 남자중고생의 31.2%가 성충동을 느꼈고 그중 27.2%가 자위행위를 했으며 2%가 본것을 모방했다고 응답했다. 또 남녀중고생의 14%가 평상시 감정억제가 힘들어지고 12%가 집중이 안돼 공부하기가 싫어졌다고 밝혔다.

음란물의 공해는 거리에만 있는게 아니다. 지난1월말 A중3년 김모군(14)은 어머니가 외출한 사이 안방에서 포르노테이프를 발견했다. 말로만 듣던 이같은 테이프를 처음으로 본 김군은 곧바로 이웃집 여자아이(5)를 같이 놀자며 자기방에 불러 폭행했다.<18면에 계속>

◎만화가게·소극장 “탈선온상”/항상만원… 90%가 중고생/외설·폭력성인용 공공연히 상영/만화 낯뜨거운제목·노골적 묘사

<19면에서 계속>

「사랑연습」 「산장의 하룻밤」 「남몰래 나눈 사랑」 「계약연애」 「밤마다 둥지를 떠나며」 「사랑스런 침입자」-지난 15일 하오 성동구 모여중앞 A만화가게에서 여학생 10여명이 읽고있던 하이틴소설의 제목들이다.

「야간열차의 뜨거운 밤」 「죽음의 욕정」 「빠걸」 「클라이맥스·원」 「누가 꽃밭에 불을 지르랴」-이제목들은 19일 동작구 노량진동 대입J학원 담벼락에 붙어있는 인근 I·S소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제목들. 「이영화는 포르노가 아닙니다」라는 선전문구와 함께 벌거벗은 소피·마르소가 베개를 안고 누워있는 모습,속옷차림의 여자가 입을 벌린채 남자와 함께 말을 타고가는 장면사진등을 바라보는 10대 재수생들은 과연 어느것이 포르노라고 생각하게 될까.

음란만화의 제목들은 차마 옮길 수가 없다. 오늘의 10대들은 이런 저질 성문화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18일 하오5시께 9개의 대입학원이 몰려있는 노량진동 N만화가게에는 10대청소년들로 40여개좌석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자욱한 담배연기속에서 그들은 만화와 대형TV 2대에 비치는 외설폭력물에 빨려들어 있었다.

재수생 손모군(19)은 『적은 돈으로 시간을 보낼수 있어 1주일에 두세번 들른다』고 말했다.

만화가게는 비디오와 만화뿐이 아니고 남녀의 정사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무협지 성인잡지 하이틴소설등을 무분별하게 대여해주고있다.

세상에 온통 성만 존재하는것 같은 풍경이다.

한여학생이 읽고있는 하이틴소설의 내용을 훔쳐보니 「그녀의 뺨으로부터 목덜미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이라고 써있었다. 심지어 「성감을 높이는 법」이란 기사가 있는 잡지도 눈에 띄었다.

88년 주부교실중앙회 조사에 의하면 음란폭력물 비디오를 본 10대는 15세이하중 34.7%,19세이하가 42.1%로 나타나 충격적이었다. 서울YMCA가 같은해말 서울과 과천지역 중·고생 1천2백여명을 조사한 바로는 음란도서를 항상 또는 자주 접한다는 학생이 24.5%였으며 중학교때 처음 봤다는 학생이 이중 68%,보는 장소는 학교(32%) 집(25%) 만화가게(15%)의 순이었다.

지난해 서울YMCA가 학교주변 만화가게 1백43곳을 찾아 조사한 결과 이용자의 82.9%가 초·중·고생이었고 가게의 13.3%가 심야영업을했다.

서울Y의 청소년상담실 한명섭간사(27)는 『선정적간행물등은 유통구조에 대한 사회적인 통제가 없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으로 노출돼 무분별한 성적자극과 성인식을 주입,탈선과 비행을 조장하는 최대의 적』이라고 못박았다.

시내 I소극장의 한 관리인은 『입장객의 90%이상이 중·고생과 재수생』이라며 『평일에도 하오1시가 넘으면 2백석좌석이 꽉차고 저녁에는 서서볼 정도』라고 10대들의 이용실태를 전했다.

학교앞문방구 주택가등에 야금야금 침투하는 성공해에 우리사회는 무방비상태이다.

지난해 11월 관악구 신림11동 주민1백여명은 청와대 시청 관악구청등지에 『89년9월 이동네에 개관한 N소극장이 선정적인 성인영화만을 상영,자녀교육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있다』면서 폐쇄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 극장에서 불과 1백여m 떨어진 곳에 M국교·중학교가 있고 인근에 초·중·고교 6개가 밀집돼 학부모들이 개관전부터 반대시위를 해왔지만 진정서를 낸 후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현행 학교보건법은 『학교출입문에서 직선거리 50m를 절대정화구역으로 지정,극장 유흥음식점 여관등 시설을 금지하고 2백m 이내의 상대정화구역에 이와같은 시설을 설치할 경우 학교 환경정화위원회 심의와 교육감의 승인을 받아야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사문화된지 오래이다.

비디오 만화 잡지 영화외에도 일반여성교양지나 TV광고등도 점차 선정적내용을 담고있어 성의 상품화를 조장하고있다.

온갖형태의 왜곡,변태,가학,도착적 성희만 가르쳐주는 음란퇴폐물을 한번이라도 접해본 학부모만이 그 폐해의 심각성을 느낄수있다는게 이 사회의 무관심을 걱정하는 청소년전문가들의 일침이다.

◇특별취재반

▲사회부=한기봉 신윤석 장병욱 홍윤오 고재학기자

▲사진부=오대근 최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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