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정부는 사형이 확정됐던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특별사면했다. 「국익」 「개전의 점」을 참작했다는 정부 대변인의 설명이 따랐다. 그닷새 뒤(17일)정부는 가정파괴범등 사형수 9명의 교수형을 집행했다. 여기에는 반인륜범죄에 대한 「경고」라는 설명이 붙었다. 그들중 5명은 죄를 뉘우쳐 장기를 유증했다는 보도와 함께―.신문을 보면서,아무래도 착잡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의 생사를 갈라놓았을까. 그것을 국가형벌권의 행사란 말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여론은 김현희의 특사를 수긍할 것이다.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9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할까. 반인륜범죄의 엄벌을 요구해온 여론은 이 역시 수긍할 것이다. 한사람의 삶을 반기면서 다른 아홉의 죽음 수긍하는,우리의 법감정은 어디까지 옳은 것일까.
문득 『88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라는 책이름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도 78년에 번역이 나와 꽤나 팔린 책이다. 저자는 클린튼ㆍ더피. 그는 미국의 샌ㆍ퀘ㄴ틴중범교도소 교도관의 아들로 교도소구내에서 태어나,교도소 구내에서 함께 자란 교도관의 딸과 결혼한뒤,샌ㆍ퀘ㄴ틴 교도소장을 12년간(40∼52년)지낸 사람이다.
범죄자의 교화를 천직으로 삼았던 그가 퇴직 뒤에 쓴 이 책은 그가 교도소장으로서 사형을 집행해야 했던 『88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젊은 교도관으로 간여했던 60건의 사형집행을 합쳐 1백50건에 이르는 사형현장의 증언이며 고발인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이런 체험을 말하고 있다.
32년 샌ㆍ퀘ㄴ틴 교도소는 살인강도 2인조의 사형을 집행하게 된다. 변호사의 끈질긴 구명운동이 있은 끝에,주지사의 특사만을 기다리는 상태에서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다. 교도소장은 지사로부터 무슨 연락이 있으면 당장 알리라는 당부를 남기고 형장으로 향한다. 교도소장 비서였던 더피교도관은 지사실과 소장실,소장실과 형장을 잇는 두 직통전화수화기를 양쪽귀에 댄채 대기한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 상오10시―. 바로 그 때 지사의 사형집행연기명령이 떨어진다. 『사형중지!』라고 소리치는 그 수화기를 통해 덜컹소리가 들려온다. 단 2초―그2초의 시차로 해서 교수형이 집행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한사람은 모범수로 감형을 받아,끝내는 사회로 복귀했다.
김현희와 다른 9명의 갈림이 꼭 이랬던것은 아니지만,형벌이란 이름의 생과 사는 이렇게 갈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형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형벌이란 이름으로 생사를 갈라놓는 사람의 역할이란 또 무엇일까. 더피 교도관이 경험한 「운명의 2초」에,사형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것 아닌가.
몇해가 지나,더피교도관은 교도소장으로서 첫 사형집행을 관장한다. 그것은 샌ㆍ퀘ㄴ틴에서 마지막 있은 교수형이었다. 구토증을 참으며 일을 마친 그는 기자들에 둘러싸인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이 처형광경을 보았으면 합니다. 살점이 떨어지고 반쯤 꺽인 목,튀어나온 두눈,빼어문 혀,이런것을 모두가 보았으면 합니다』
그는 의무감을 가지고 이런 말을 했다고 술회한다. 그말은 사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형이라는 국가살인의 존속을 주장한다는 항변이기도 했다.
그는 퇴직뒤 사형폐지를 위해 발벗고 나선다. 그의 사형폐지론은 현장의 증언을 담고 있기에,설득력이 매우 높다. 그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10판을 거듭,거의 10만부가 팔렸다. 78년 당시의 숨은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우리의 법감정은 아직도 『그러나 사형제도는 있어야 한다』는 쪽인 것 같다. 몇해전 여론조사는 우리나라사람 77.7%가 사형제도 존속을 찬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84년 갤럽연). 작년 5월이래 사형폐지협회의 활동이 시작되고,사형의 위헌심판이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인 지금 다시 조사한다면 어떤 숫자가 나올지가 궁금하다.
그와 같은 법감정은 사형규정이 많은 우리 형사법제에 잘 나타나 있다. 군형법을 제외하고도 9개법률 44개조문이 사형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총21개 조문중 13개조가 사형을 규정했으며,사형이란 말이 19번이나 되풀이 된다.
그중 하나는 작년의 여소야대 국회가 추가한 것이다(동법제5조의7=가정파괴범). 그것은 여론의 반영이었음에 틀림없다. 그 여론의 박수속에 검찰과 법원은 사형을 구형하고 선고하는 빈도를 높여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런 엄벌주의가 흉악범근절에 유효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5공 이래 또하나 눈에 띄는 현상은,보아란듯 몇명씩의 사형을 한날 한시에 집행하고 이를 발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문지상을 통한 일종의 「공개처형」인셈이다. 6공 들어서도 이번까지 그런식의 사형집행이 두 차례째다. 이른바 사형의 위협효과를 높이자는 뜻인것 같다. 그러나 사형의 위협효과는 형사정책학에서도 의문시하고 있다. 반면범죄예방의 제압효과는 「필살」에 있기 보다는 「필포」에 있는 것인데,그 「필포」의 치안태세는 얼마나 정비되고 있는지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는 「필포」없는 「무더기사형」을 보면서,여기 드러난 형벌만능의 위험,그것이 사회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이에 이르러,생각은 「딱하다」는 한 마디로 그친다. 「무더기사형」에라도 무슨 효과를 기대해 볼 수 밖에 없는 민생치안과 사회풍조가 딱하고,겨우 그런 발상이나 하는 정부가 딱한것이다.
정말 이 정부의 치안능력,정책능력은 지금 어느 수준에 있는것일까.【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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