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는 「경제위기」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힐만큼 들었었다. 수출은 기고 수입은 뛰는가하면 물가불안이 겹쳐 경제를 부추기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특히 기업쪽에서 목청을 돋웠었다.그러는 사이에 재벌기업들은 땅과 건물을 사모으기에 바빴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0일 은행감독원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작년 한햇동안 30대 재벌그룹들이 새로 사들인 부동산은 2조4천4백억원에 이르렀다. 이것은 처분한 몫을 뺀 순증가분이다.
당국의 여신관리를 받고 있는 이들 대기업은 5조원규모의 부동산취득승인을 받아 이미 장부가격으로 3조8천억원어치의 부동산을 취득했다. 땅의 경우 1천만평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30대 재벌들은 지난해말 현재로 은행대출의 14.7%를 차지했다. 지급보증까지 합친 여신은 18.3%선이었다. 말하자면 12조(대출)에서 17조5천억원(여신)에 이르는 엄청난 은행빚을 짊어진 재벌기업들이 「업무용」이라는 이름밑에 부동산을 사모았다는 얘기다. 더구나 상위 5대 재벌들이 30대그룹 전체의 62.5%를 차지했다. 대기업의 부동산취득도 5대 재벌들이 앞장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당국이 외치고 있는 「부동산투기대책」은 몇몇 송사리 투기꾼이 아니라,대기업의 부동산투자바람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는 헛구호에 지나지않게 될 것이다. 물론 이들 대기업이 사들인 부동산은 명목상 「업무용」으로 돼 있다. 그러나 수출이 안되고,지나친 노임상승으로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해가고 있다고 큰소리쳤던 지난 한햇동안 부동산에 열중했다는 사실은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4대기업의 땅투기진상을 캐기 위해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힌 일이 있었다. 국회에서도 재벌기업들의 땅투기가 문제됐었다. 30대 그룹이 차지하고 있는 땅은 대구직할시규모라는 사실도 밝혀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은행빚을 지고도,그리고 당국의 여신관리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땅에 대한 투자는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말이 투자지,그것을 정상적인 투자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경제가 살고,결과적으로 기업이 살자면 부동산이 아니라 생산과 수출에 장래를 걸어야 한다. 은행이라는 국민의 돈으로 커온 대기업이 생산은 뒷전에 밀어두고,투기에 열을 올린다면 기업과 국민경제는 시들어버릴 것이 확실하다. 대기업의 부동산투기에 보다 책임있고,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법을 다시 고쳐서라도 업무용ㆍ비업무용의 한계를 보다 엄격하게 규정하고,전반적으로 부동산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기업은 부동산투기가 사실상 자해의 길을 닦는 망국적인 짓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코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긴 장래를 그르치는 어리석음을 더이상 두고만 봐서는 안된다. 정부가 부동산투기를 잡을 생각이라면 먼저 대기업의 부동산바람을 잡는 구체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금융규제를 풀고,수출금융과 시설금융을 늘려 주는등 국민의 부담으로 베풀어지는 소위 「경제부양책」도 땅투기를 잡지 못한다면 밑빠진 독에 물붇기 꼴이 될 것이다. 경제위기를 외치면서 부동산에 열중했다는 국민의 배신감은 오히려 2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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