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성의 상품화시대 청소년이 병들고 있다/오늘 만나 즐기고 내일이면 남남/환락가 초만원… 여학생 더많아우리의 10대는 성앞에 버려져 있다. 성의 개방화시대를 넘어 상품화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10대에게 사춘기는 낭만과 고민을 통해 성숙을 예비하는 계절이 아니라 유혹과 충동에 묻혀 신음하는 시기가 되고 있다. 10대의 분출하는 욕구는 그들을 도처에 널려 있는 성의 함정과 동굴,성의 수렁과 나락에 빠져 자아를 잃게 한다. 끊일새 없는 성범죄,성을 향유하기 위한 환각제의 범람,10대매매춘,혼숙과 혼음,「인류의 마지막 할 일은 성뿐」이라고 외치는 것 같은 유해 환경속에서 10대는 비틀거리고 병들어가고 있다. 스스로 고삐를 당기기에는 분별력이 모자라는 그들에게 어른들은 전혀 모범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폭력 과열과외 강ㆍ절도 등 그동안 우리 사회의 환부를 심층보도해온 한국일보는 이제 10대에게 눈을 돌려 「고삐없는 10대의 성」을 국민들과 함께 걱정하며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편집자주】
지난 16일 밤10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D디스코클럽을 들어가려던 취재팀은 입구에서 건장한 남자들에게 제지당했다.
『아저씨들은 집에 가세요. 여기는 아저씨들이 오는 데가 아닙니다』
이곳에서 약속을 했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이를 보던 근처 다른 업소의 「삐끼」가 『거기는 중학생들만 가는 곳이니 들어갈 생각을 말고 영계가 많은 우리 집으로 오시죠』하고 끌었다.
취재팀은 이튿날 밤 10시께야 그 업소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화장을 짙게 했지만 10대임에 틀림없는 한 소녀가 사회자인 인기 개그맨 이모씨에 의해 무대위로 올려졌다.
『숙박계 벌써 썼어. 갈데까지 가놓고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개그맨의 말에 10대 손님들이 까르르 웃었다. 이 소녀를 세워놓고 한동안 자극적인 농담이 오고간 뒤 귀가 멍멍할 정도의 음악이 흘러 나왔다. 발디딜 틈이 거의 없는 무대에서 10대중 몇명은 거울에 바짝 붙어 최근 유행하는 선정적 람바다춤을 익히기에 정신이 없었다.
무대위에 올려졌던 안모양(17ㆍS고2)은 같이 온 친구 3명과 함께 웨이터가 소개해 준 같은 또래의 남학생들과 어울려 밤 12시께 이 업소를 나갔다.
이 건물에만 같은 종류의 디스코클럽이 4개가 있다. 5층의 H클럽 화장실에서는 소매없는 러닝셔츠 차림의 소년이 각성제로 보이는 노란 알약 20여개를 털어넣은 뒤 무대로 나가 쉬지 않고 춤을 추어댔다.
밤 12시30분께 30대 일본인 2명이 한국인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일본인들은 이 한국인의 소개로 미리 와 있던 10대소녀 2명과 인사를 했다. 이 소녀들은 일본인들이 오기 전부터 잘 아는 웨이터와 함께 간단한 일본어 인사말을 나누며 「손님맞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10대들은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만나고 있었다. 한적한 공원이나 산책로보다는 보다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곳에 그들은 모여 있었다. 긴 망설임과 고민ㆍ가슴 두근거림이 없이,밤새 편지지를 찢고 또 찢는 감정의 되새김과 여과도 없이 즉흥적으로,직설적으로 만나고 또 그렇게 헤어지고 있있다.
H디스코클럽의 한 종업원은 『토요일 밤에는 학생들이 떼로 몰려 오는데 여학생들이 더 많다』면서 『여학생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하이힐등으로 어른티를 내려하고 여름이면 핫팬티등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다』고 말했다.
이날 디스코텍에서 만난 10대 소녀는 『술집에서 나가면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에 서슴지 않고 『어른들이 더 잘 알고 있잖아요』하고 쏘아 붙였다.
그들은 어설픈 어른 흉내를 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시들어 가고 있었다.【특별취재반】<23면에 계속>
◎미팅하자마자 여관으로/「당일치기」 성행/유흥가 숙박업소 “10대가 반”/집에는 “독서실서 잔다” 핑계전화/친구 낙태비 마련하려 단체매혈도
<1면에서 계속>젊음의 의미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우리의 10대는 어둡고 은밀한 곳에서 웃자라고 있다.
친구의 낙태비용을 대주기 위해 피를 파는 여고생,하교길에 지하철 무인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옷과 화장품 꺼내 밤늦게 거리를 배회하는 여중생등 10대의 탈선은 이제 남의 집 일이 아니다. 심야의 소극장 만화가게 독서실 10대 전용카페는 물론 변두리 여인숙에서 혼숙 혼음하는 10대들도 흔하다.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10대는 그만큼 탈선과 성에도 주저함이 없다.
거리에 나서는 청소년들은 우선 학교 부근의 카페에서 「사전작업」을 거친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카페 골목은 하교시간인 하오 5시께가 되면 이름표를 단 교복차림에서부터 화장을 하고 옷가게를 기웃거리는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인근 고교등에서 몰려 나온 학생들로 길거리가 메워진다.
학생들은 『성적과 관계없이 거의 모든 학생이 이곳에 한번 이상은 들른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하오 9시께 이 일대 N카페에 여자친구와 함께 앉아있던 박모군(16ㆍJ고1)은 집에는 학교가 끝나면 독서실로 간다고 말해 놓고 출석점검을 하는 독서실에 들렀다가 집에 볼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카페로 나왔다고 했다.
속눈썹 화장까지 한 이모양(18)은 거리낌없이 자신이 K고3년생이라고 밝히고 『가방속에 옷과 화장품을 넣어 다니거나 지하철 역사보관함에 맡겨 두었다가 하교길에 옷을 갈아 입는다』며 『이 시간에는 지하철역 화장실이 여중ㆍ고생들로 엉뚱하게 붐빈다』며 웃었다.
중ㆍ고생 전용 카페로 자리를 굳힌 돈암동의 TㆍLㆍA카페에서는 얼굴을 겨우 분간할 정도의 어두운 조명아래 10대들이 1천원짜리 커피 1잔을 시켜놓고 3∼4시간 동안 담배를 피워가며 하오 10시께까지 미팅을 하고 있었다.
미팅ㆍ폰팅ㆍ헌팅ㆍ일일찻집 등을 통해 이뤄지는 이들의 만남은 일반적인 미팅이 많지만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를 수 있는 헌팅도 자주 목격된다. 상대를 선택한 10대들은 이태원이나 청량리의 디스코클럽ㆍ나이트클럽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아예 첫 만남에서부터 D시장이나 대학로 부근 숙박업소로 직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7일 이태원의 H업소에 놀러온 4쌍의 10대는 일행중 지난해 J고를 졸업한 재수생 정모군(19)커플의 「마담뚜」 역할로 만나 이날로 「관계」를 맺은 번개커플. 인사한 지 2시간여만에 15만원 상당의 술을 마시고 급속도로 가까워진 이들은 새벽 3시30분께 외국인 전용나이트클럽인 인근 M클럽으로 옮겨갔다.
이곳에서 1시간여 동안 외국인 못지 않게 대담한 행동을 보인 이들은 인근 간이식당에서 허기를 달랜 뒤 쌍쌍이 골목으로 헤어졌다.
이 부근 여인숙의 한 주인은 『밤 12시 넘어 찾아오는 투숙객의 절반이 10대』라며 『독서실에 있다고 집에 전화를 거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새벽에 독서실로 돌아가 옷을 갈아 입은 뒤 가방을 들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등교한다는 것을 부모들은 잘 모르고 있다.
돈암동의 숙박업소 주인은 『지난해 여름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3명이 한밤에 투숙했는데 새벽에 보니 어떻게 들어왔는지 여학생 2명이 함께 자고 있었고 본드가 방안에 널려 있었다』고 혀를 찼다.
청량리 B호텔 주변에서 18일 새벽에 서성거리던 여고 3년생은 성경험을 묻자 대답은 피한 채 『친구가 임신을 하면 낙태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친한 친구들끼리 단체로 피를 판다』고 말했다. 『그런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노는 학생들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라고 얼버무렸다.
청량리 D의원의사 김모씨(31)는 『한달에 10여명의 10대가 성병을 치료하러 찾아 온다』며 『놀라운 것은 사창가에서 병을 얻은 경우 보다 남녀 친구로부터 전염된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사회부=한기봉 신윤석 장병욱 홍윤오 고재학기자
▲사진부=오대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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