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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위기」 무책/홍선근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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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위기」 무책/홍선근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0.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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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시중으로 풍성하게 풀려나가기 시작한 게 지난해의 11ㆍ14경제종합대책 이후부터이므로 벌써 6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만성적인 통화과잉 속에서 물가가 계속 불안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통화당국은 최근 돈이 시중으로 더 풀릴까봐 공급창구인 시중은행의 일반대출을 사실상 동결시켜 놓았다.

이처럼 통화당국이 겁낼 정도로 돈이 잔뜩 시장에 풀려 있는데도 증권시장은 내리막길을 계속 달려 증시주변의 돈이 어디로 가는지 꼬리도 남기지 않은 채 잠적을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돈이 시중에 엄청나게 풀려 있어 물가가 들먹거리고 부동산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반면에 은행의 대출창구는 막히고 증시는 주저앉고 있는 현상을 두고 금융계에서는 「통화위기」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이 위기는 돈이 시중에 필요이상으로 엄청나게 풀려 있다든가,혹은 필요한 양보다 훨씬 적게 풀려 있다는 류의 것이 아니다.

돈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시중에 돈은 더이상 공급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풀려 있는데도 정작 필요한 곳으로는 돈이 흘러가지 않는 구조상의 왜곡이 위기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로 심각하다는 얘기다.

한 경제전문가는 이를 모판이론으로 설명했다. 모판이 반듯할 경우엔 물을 조금 대주더라도 구석구석에 물이 골고루 퍼지지만 모판이 30도가량 기울어 있으면 물을 아무리 대더라도 기울어져 내려간 쪽으로만 물이 괴어 과다한 물로 잡초만 자랄뿐,기울어져 올라간 쪽은 여전히 메말라 모가 다 죽어간다는 비유였다.

자금흐름의 구조도 흡사 이와 같아서 왜곡돼 있으면 아무리 돈을 공급해도 투기와 물가불안만 자랄 뿐 「생산」은 촉발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이에대해 정부도 한때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듯 자금흐름의 왜곡을 바로잡겠다고 밝혔으나 6개월이 지나도록 구체적으로 이뤄진 성과는 아무것도 없다. 최근의 등기의무화에 이르기까지 각종 대책발표가 잇달았으나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계속되는 투기판이 그 열기로써 반증하는 꼴이 되고 있다.

갖가지 대책들의 일관된 공통점은 시쳇말로 「한가롭고 상투적」이라는 사실이다. 한국경제구조의 속병에서 나오는 경제위기ㆍ통화위기에 대해 정부당국은 차근차근 대처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이런 일상적 대책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으나 사실은 이 위기를 위기로써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무책임과 안일함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어 위기관리적 대책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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