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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독재의 피」로 맺은 4·19 의형제/그날의 그자리에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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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독재의 피」로 맺은 4·19 의형제/그날의 그자리에 나란히

입력
1990.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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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이던 이씨 경무대앞 총상 총알빗발뚫고 현씨가 구출“인연”/“매년 4월은 다시온건만” 자부·회한 교차/회사원 현태길씨 포천군수 이영민씨4·19 30주년. 독재와 불의에 항거,아스팔트에 뜨거운 피를 흘렸던 「4월의 사자들」에게 지나간 한세대는 환희와 고뇌,영광과 고통이 뒤섞인 세월이었다. 이나라 민주주의의 디딤돌을 놓았다는 자부심은 산화한 동료들의 뜻을 얼마나 이루었는가 하는 자책감을 항상 동반하게 한다.

그날 경무대앞에서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메던 이영민씨(49)와 이씨를 구조한 인연으로 의형제가 된 현태길씨(54)는 18일 낮 다시 그자리에 서서 자부와 자책감을 나누었다.

4·19의 꿈과 좌절이 교직된 30년세월뒤 그들은 원숙한 중년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씨는 경기도 포천군수,현씨는 한국트럭터미널 석유사업부장으로 각기공직과 업계의 중추적위치에 올라서있다.

60년4월19일 하오1시30분께 당시 서울 강문고 3학년이던 이군은 동료,대학생들과 함께 경찰의 저지를 뚫고 효자동 전차종점까지 진출했었다. 경무대 정문앞에서 데모대에 총을 겨누고있던 경찰은 이군과 대학생들이 빼앗아 탄 소방차가 경무대쪽으로 치닫자 발포를 시작했다.

이군은 허둥지둥 차에서 내려 비탈길을 달려 내렸갔으나 효자동종점에 이르렀을때는 얼굴에 피가 흥건했다.

총탄이 뒤머리를 스치고 지나간것도 몰랐다. 이때 동국대 정외과 3학년이던 현씨가 총탄을 피해 효자동 강락의원에 숨어있다가 달려나와 이군을 부축했다.

현씨는 경찰의 곤봉세례를 받으면서 이군을 들쳐업고 뛰었다. 현씨의 귀곁으로 총탄이 마구 스쳐갔다. 그동안에 또 총을맞은 이군은 오른팔을 축 늘어뜨렸고 왼쪽 다리가 흔들흔들했다.

근처 병원을 모조리 두드리다가 지친 현씨는 진명여고 앞길에서 있던 앰블런스에 이군을 태워 서울역앞 세브란스병원으로 후송했다.

이군은 오른쪽어깨,왼쪽다리,뒷머리에 총상을 입은 상태였다. 어깨 다리를 관통한 총탄이 뼈를 빗나가고 뇌를 다치지 않은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한달쯤뒤 현씨는 연락을 받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군을 찾아가 얘기를 나누다 고교4년 후배라는 사실을 알고 그자리에서 의형제를 맺었다.

병상에 있던 이군은 피흘리는 자신과 현씨의사진이 60년5월23일자 라이프지에 크게 실린것을 보고 수소문한끝에 생명의 은인을 찾아냈다.

한국일보 백형인기자(정년퇴임)가 촬영했던 그 사진은 보도관제 때문에 신문에 실리지 못한채 라이프지를 통해 세계에 알려졌고 「사상계」6월·9월호에도 게재됐었다.

그후 고교를 졸업한 이씨는 성균관대 법학과에 진학,재학중 당시 5급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경기도청과 내무부를 오가며 성장,경기연천군수를 거쳐 지난해말 포천군수로 옮겼다.

반면 5·16다음해인 62년 동국대를 졸업한 현씨는 시국에 절망과 회의를 느껴 취직도 하지않은채 고향 화성에서 7년동안 농사를 지었다.

그뒤 68년에 선배로부터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현씨는 73년 용산시외버스터미널이 생기자 이곳에서 일하다 83년부터 ㈜한국트럭터미널에 근무하고 있다. 이들 의형제는 그동안편지·전화연락은 계속했지만 일에 쫓겨 만날틈이 별로 없었다.

없어진지 이미 오래된 효자동 전차종점과 청와대정문앞 비탈길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어렸다. 하늘을 찌를 듯한 그날의 함성과 콩볶듯 귀를 찢어대던 총탄소리,여기저기 나무토막처럼 쓰러지던 학생들의 모습이 생생했다.

봄 가을 1년에 두번씩은 꼭 수유리 4·19묘지를 참배하는 이들은 며칠전에도 찾아가 잡초를 뽑으며 한동안의 회상에 젖다 돌아왔다고 한다.

『4·19의 재평가 작업이 활발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이 이들의 똑같은 소감. 4·19가 영구혁명으로 지속돼야 한다는 다짐은 다시 4·19의형제의 가슴을 뜨겁게하는 것 같았다.【이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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