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창당멤버… 언론출신 야권 2인자/만성인플레에 자본ㆍ기술전무… 난제도 산적16일 네팔의 과도정부총리로 지명된 크리시나ㆍ프라사드ㆍ바타라이 네팔회의당(NCP) 총재대행(65)은 30여년에 걸친 절대왕정체제를 민주체제로 탈바꿈시켜야 할 무거운 짐을 지게됐다.
범야지도자인 가네시ㆍ만ㆍ싱 NCP총재(75)가 건강을 이유로 총리직 제의를 사양함에 따라 과도정부의 수반을 맡게된 바타라이는 강인하고 직선적인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온 그는 1924년 인도 바라나시에서 태어났다. 바라나스대학 재학중에는 네팔학생연맹 인도지부를 창설하는등 일찍부터 정치지도자의 자질을 보였다. 지난40년대 네팔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네팔국민회의당(현네팔회의당전신)의 창당멤버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국민회의당 기관지인 「네팔의 소리」편집인을 지냈으며, 네팔언론인협회 초대회장을 맡아 네팔언론인대표단을 이끌고 50년대말 소련을 방문하기도 했다.
1848년부터 1백여년간 네팔을 족벌통치했던 라나가의 마지막 세습총리가 사임한 1951년에는 정국수습을 위해 구성된 자문의회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1959년 국민회의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자 바타라이는 네팔 최초로 출범한 의원내각제 정부의 국회의장에 선출됐지만 현국왕의 선왕인 마헨드라국왕이 의회제도를 철폐,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후 그는 네팔국민회의당의 사무총장을 맡아 당내 제2인자로 가네시ㆍ만ㆍ싱 당수를 보좌해왔다.
이제 바타라이 총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백60달러로 아시아최빈국인 네팔을 개혁과 번영의 길로 인도해야할 선봉에 서게 됐지만 그 앞날은 그리 밝지않다.
자본과 기술이 전무하다시피 한데다 만성적인 연료부족과 인플레에 허덕이고 있는 네팔경제는 노력과 의욕만으로는 활기를 불어넣기 힘들만큼 극도로 침체돼 있다. 여기에다 최근 대외무역의 40%를 차지하는 인도와의 관계가 불편해져 인도로 부터의 원유공급이 중단되는등 경제적궁핍이 가중되고 있다.
게다가 전국민의 90%가 엄격한 신분계급제도를 골간으로 하는 힌두교 신자라는데 개혁의 어려움이 잠재해 있다. 웬만한 자극이나 동기유발로는 계급에 따라 직업이 결정된채 수백년을 살아온 네팔국민들을 발전과 개발의 인력자원으로 동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벌여온 민주화운동 이상으로 어려운 길에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김현수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