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고유한 민속악기로 풍적(백파이프)이란 게 있다. 가죽으로 만든 공기주머니에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고 주머니에 달린 관을 울려 독특한 피리소리를 내는 악기다. 고유한 치마차림의 스코틀랜드의 장병들이 풍적을 둘러메고 연주하며 행진하는 모습을 우리도 본적이 있다.풍적에 얽힌 일화가 문득 생각난다. 런던심포니의 유명한 지휘자였던 토마스ㆍ비첨경에게 자식의 음악공부에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한 극성스런 상류층부인이 찾아왔다. 먼저 거장에게 경의를 표한 부인은 자기 자식에게 무슨 악기를 배우게 하는게 좋겠냐고 조언을 촉구했다. 비첨경이 대뜸 권한게 풍적이었다. 그런데 그 풍적을 권한 이유가 걸작이었다.
무슨 악기이든 연주자의 피나는 노력과 기량에 따라 소리의 수준이 달라지는데,풍적만은 예외여서 처음이나 수련후에나 그 소리가 그 소리여서 마음놓고 권할만하다 했다는 것이다.
요즘 국내에서도 일부 소개되고 있는 미래학자 앨빈ㆍ토플러의 새 저서 「권력이동」에는 권력의 질을 수준별로 구분해서 보고 그 연계를 언급하는 대목이있다. 토플러에 의하면 권력은 물리력과 돈,그리고 지식의 세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서로 보완ㆍ대체ㆍ강화된다. 이중 물리력은 저항이 따르기 때문에 저질의 부정적인 힘이고,돈은 물리력처럼 위험하거나 벌을 주는 대신 보상의 방법을 택하기 때문에 한수위의 중간질의 힘이다.
그러나 지식은 물리력을 이성과 설득으로 대신하고 돈의 행사를 막을 수도 있는등 그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어 가장 양질의 민주적 힘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권력도 이제는 양이 아니라 질로 통제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지식이란 것도 쉽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객관적 타당성을 요구할 수 있는 가치체계요 지혜라고 여기면 될 것이고 더러 권력과 맞물려 지도자 자질론의 모습으로 표출된다한들 그저 국민들이 믿고 따르게 하면 합격점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주변에서 빚어지는 건 온통 난리법석이다. 오랜 세월동안 4ㆍ19다 6ㆍ29다해서 그만큼 뜸을 들이고 값비싼 제물을 바치며 방향타 수리를 했으면 이제는 정치도 급수를 높인 소리를 낼때가 됐는데 여전히 깽깽이같은 풍적소리이다.
상대국보기가 낯뜨거운 외교비사까발리기 공방이 잦아든 듯하기가 무섭게 「버르장머리」「공작정치」 소리가 터지고,「정치생명 끝장난다」는 맞받아치기에 이어 집안끼리의 흙탕물 당권경쟁이 나라를 흔들어 국민마저 절망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노벨상 수상자들이 심포지엄에서 의견을 모았던 지도자지침이 생각난다. 그중의 하나가 지도자는 위기ㆍ분극화의 문제해결에 전력을 기울이되 그 문제들을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무릇 지도자이거나 실세임을 앞세우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비첨경의 그 풍적소리를 한번 들려줬으면 어떨까 싶다. 세월이 흘러도 결코 좋아지지 않는 소리를 계속 듣는게 얼마나 역겹다는 것을 그들도 알게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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