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당 정인보선생은 평생 자식들과 한 기차를 타지 않았다. 근대화 초기에 3천재중 1인으로 꼽히기도 했던 국학자 위당이 살았던 시대(1892년∼1950년 6ㆍ25때 납북됨)만 해도 대를 끊기는 것이 선대에 대한 최대 불효라는 유교적 가치관이 강했던 탓도 있겠다. 문명의 이기가 인명을 멸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선각이 오히려 돋보인다. ◆야유회다 가족놀이다 하며 직장동료나 몇가족이 한 버스에 떼지어 타고 나들이 다니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위당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친구의 반론이 아주 충격적이었다. 「천애고아를 남겨 고생시키느니…」하는 것이었다. ◆부나 모가 어린 자녀와 함께 동반자살을 하는 사건을 볼때마다 선각자 위당의 일화와 평범한 그 친구의 충격적인 말이 자꾸만 오버 랩되어 착각을 하기도 하고 결론없는 반추를 하기도 한다. 특히 지난 10일 폭등하는 월세를 감당못한 엄승욱씨가 『가난을 자식들에만은 물릴 수 없다』며 아들(8세ㆍ국교3년) 딸(6ㆍ국교1년)과 부인(38세)등 가족들을 자멸의 길로 이끈 사건을 대하면서 「그 어린 생명들까지 꼭 그렇게 데리고 가야만 했을까」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을 감내키 어려웠다. ◆물론 엄씨의 자살배경을 따져 보면 생존경쟁의 낙오자라는 그의 탓일 수만은 없다.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게 한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 『정책의 실패로 내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매년 오르는 방세 조차 댈 수 없다』는 그의 마지막 절규는 1백23만 무주택 가구의 항변을 대변하는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한다. ◆전세값 파동 2달여만에 15명이 전ㆍ월세를 감당못해 자살을 했다면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이며 그처럼 그늘진 구석을 안고서 선진국이 된다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정치하는 사람들은 집안싸움 걷어 치우고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를 모두가 자문해 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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