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농어촌 일손부족 심각…“폐업해야 할 판”비명/품삯 60%까지 올라도 못 구해/도시로 「인력사냥」…영농포기도농어촌의 일손 부족현상이 심각하다.
모내기등 본격적인 영농철과 출어기를 앞둔 요즘 농어촌에서는 일손을 구하기가 어렵게 되자 봉고차를 동원,인근도시로 나가 선금을 앞세워 「인력사냥」에 나서는 새로운 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보다 20%에서 최고 60%까지 오른 품삯을 주고도 일손확보가 불가능하자 숫제 영농을 포기,농토를 부동산 소개소에 내놓고 정든 생활터전을 떠나려는 농민마저 속출하고 있다.
농어촌의 인력난은 지난 80년 이후 가속화된 이농현상으로 농어촌인구가 30%가량 줄어든데다 남은 일손이라야 대부분 노약자와 아녀자들 뿐이고 최근 이들마저 힘든 농사일 대신 수입이 나은 인근도시의 공장이나 공사장으로 빠져 나가 더욱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농수산물 개방조치로 사과 배 등 국내 농산물 가격이 폭락,영농의 채산성마저 악화된 상태에서 설상가상의 인력난 여파로 품삯마저 최고 60%까지 껑충 뛰어 농민들의 영농의욕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최근 전북 완주ㆍ순창지역의 경우 지난해 1만5원이면 구할 수 있었던 과수원 가지치기작업에 올들어는 60%가 오른 2만5천원을 주고도 일손 구하기가 불가능해졌고 비료나 거름주기등 부녀자나 노인들도 힘안들이고 할 수 있는 논ㆍ밭일도 지난해 1만원에서 40∼50%가 오른 1만4천∼1만5천원을 주고도 도대체 사람 구경하기조차도 어려워졌다.
경남 창녕 밀양 등 비닐하우스 재배지역에서도 남자 1인당 하루 품삯이 지난해 이맘때의 1만5천원에서 2만2천∼2만3천원으로 7천∼8천정도 뛰어오르는등 전국적으로 품삯이 평균 30%이상 올랐는데도 일손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이같은 높은 품삯에도 일손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전남 나주 무안 장성 순천 등지의 일부 농가에서는 봉고차를 대절,광주등 인근도시와 심지어는 서울까지 진출,교통비 숙식을 부담하는 것은 물론 선수금을 주는 조건으로 「일손사냥」에 나서고 있다는 것.
무 수확이 한창인 무안군 해제면 광산리의 농민 노현섭씨(45)는 『무밭 작업을 위해 12인 승봉고차를 대절해서 상경,인부 6명을 구해와 일하고 있다』며 세끼 식사와 간식,잠자리까지 제공하면서 품삯으로 2만5천원을 지불하다 보니 1인당 하루 경비가 최소한 3만2천∼3만4천원이나 되나 농촌일에 익숙치 못한 서울 일손이라선지 능률이 오르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무안읍 교촌리 상봉마을의 농민 정모씨(57)는 『현재 품삯으로 2만원을 주고 있는데 앞으로 5천∼1만원을 더주고도 일꾼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인력난이 심각하다』며 『이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많은 토지를 처분했고 나머지도 소작을 주는 방법으로 경작규모를 줄여 나갈 계획』이라고 털어놨다.
광양제철소가 있는 동광양과 순천 승주 보성지역 농촌에는 제철소와 인근 연관단지 입주업체들이 통근버스를 이용,농촌인력을 훑어 가버리는 바람에 인력고갈사태마저 빚어지고 있다.
경남 함안군 칠서면 북촌리 추영기씨(54)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웃 마을끼리 품앗이를 통해 모내기를 했는데 올들어 인근에 세워진 농공단지내의 공장이 가동되면서 이 마을 부녀자 30여명이 농사일을 그만 두고 공장에 취업하는 바람에 올 모내기작업이 제대로 이뤄질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어촌의 경우도 일손 부족 현상은 마찬가지.
충무 거제 남해 진해만 등 남해안일대 선주들은 최근 젓갈용 봄멸치잡이를 앞두고 선원을 구하지 못하자 1년분에 해당하는 선수금을 지급하는등 선원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충무시 항남동 선주 김모씨(51)는 『최근 남해 미조근해에 수십년만에 처음 형성된 멸치어장을 눈앞에 두고도 선원이 없어 출어가 지연되자 하는 수 없이 가족과 친지를 태워 출어했다』며 『일부 선주는 선원을 구하지 못해 출어를 포기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21면에 계속>
◎있는 땅도 못쓰고 이농가속/남자 하루 품삯 2만5천원으로 껑충/그래도 「농사일 힘들다」도시로 공장으로/“모내기철 되면 얼마나 더줘야 하나”벌써부터 한숨
<1면에서 계속> 농어촌의 일손 부족 현상을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농수산물 수입개방에 따른 여파로 채산성을 잃은 농촌은 갈수록 황폐화돼 더이상 「살 곳이 못되는 곳」으로 변해가면서 도시로의 집단이주로 일손은 더욱 부족해지고 품삯마저 껑충 뛰어 올라 영농이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
일손부족은 농촌의 황폐화에 따른 이농과 농촌인구의 고령화ㆍ수입개방에 의한 농수산물 가격의 폭락등 농어촌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집약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해 농수산물 수입개방 조치로 바나나 자몽 파인애플 포도주등 농산물과 관련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국내 사과 배 포도값이 20∼50% 폭락,판로를 잃은 과일들이 창고에서 썩어 나가자 농민들은 곳곳에서 과수나무를 잘라 버리는 극단적인 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또한 최근 모내기등 본격적인 영농철을 앞두고 일손을 구하지 못해 농민들은 시름에 잠겨 있다.
농촌의 청년들은 이미 도시로 빠져 나가 노인들과 일부 아녀자들만이 남아 있는 일손이지만 인근에 공장과 건설공사장이 들어서면서 이들마저 농사보다 수입이 나은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고 있는 실정.
봄철을 맞아 일부 농가에서는 딸기 오이 고추 등 시설채소류와 화훼류 등 겨울철 시설원예의 수확과 과수원의 가지치기,묘목이식,보리밭손질,못자리가꾸기 등을 위해 일손이 필요하나 구하기가 어렵자 봉고차로 도시에 나가 선금까지 주면서 인력사냥을 나서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용케 구한다고 해도 지난해에 비해 20∼50%이상 껑충 오른 노임 때문에 농가의 부담은 감당키 어려운 지경이다.
요즘 마늘 양파 재배작업이 한창인 전남 무안지방의 경우 하루품삯이 남자 2만5천원 여자 2만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5천원 올랐으나 그나마 일손을 구하지 못해 일부 농가에서는 봉고차를 대절,서울 광주 등으로 원정나가 10여명씩 구해와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마늘 양파수확과 모내기작업이 한창일 오는 5월초에는 품삯을 지금보다 최소한 5천원이상 더 줘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충남 당진군의 평야지대인 합덕ㆍ우강ㆍ신평면의 요즘 하루품삯도 남자가 2만2천∼2만3천원,여자가 1만7천원∼1만8천원 선으로 지난해에 비해 4천∼5천원이 올랐으나 그나마도 일손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
충남 서산ㆍ태안지역도 품삯이 30%이상 껑충 뛰었어도 주변에 공단이 들어서자 힘든 농사일을 기피하는 풍조가 두드러져 인력이 공장으로 빠져 나가는 바람에 농촌인력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전남 순천시 인안동장 정종옥씨(50)는 『농촌의 인력난과 함께 품삯이 크게 오르고 있는 것은 농촌일이 기업체의 시간제 근무와는 달리 하루 종일 하는 고달픈 작업인데다 임금도 고정급이 아니어서 일손을 도시나 인근공장으로 빼앗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광주 광산구 비아동에서 시설원예를 하고 있는 나모씨(39)는 『요즘 사람들은 힘든 농사일을 기피하고 있을뿐 아니라 철저한 시간제근무를 고집한다』며 『술도 맥주,담배도 6백원짜리를 원하고 더러는 다방커피를 요청하기까지 한다』고 달라진 세태를 나무랐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김성수씨는 『지난 88년 양담배 수입개방으로 잎담배를 심었던 밭에 고추를 심었다가 과잉생산으로 홍역을 치렀다』면서 『이번에 양조용 포도인 「시벨」을 갈아 없애고 「거봉」같은 품종을 심는 것도 생각해 봤으나 물밀듯 밀려오는 각종 수입농산물에다 농촌일손마저 구하기 힘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따라서 아직 농촌을 지키고 있는 이들 소수의 농민들도 탈출의 기회를 엿보고 있어 극적인 대처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농촌의 공동화 현상은 불가피할 것 같다.<지방=종합>지방=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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