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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잘못/박승평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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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잘못/박승평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0.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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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영수증 주고받기가 생활화되었던들 이런 소동은 없었을 텐데…』하는 천연덕스러운 개그맨의 익살을 라디오에서 들었다. 만약 그 소동이 도대체 무얼 가리키는지를 누가 묻는다면 정말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만큼 세상의 입방아는 시류를 타 빨리 아픈곳을 쪼아대고 또 널리 번지는 오늘의 세태이다.여당후보진영이 대구보선에서 통장들에 유권자들에게 나눠주라고 돈을 뿌렸으나 그 통장이 돈을 가로채 주민들이 돈내어 놓으라고 들고 일어난 웃지 못할 사건이 바로 그 소동이다. 그 한심한 작태를 엉뚱하게 영수증 주고받기 문제로 엇몰아치는 민심이 차라리 서릿발 같다.

TV의 뉴스 화면에 비친 돈내어 놓으라고 항의하는 그 주민들의 모습은 더욱 한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통장집앞에 웅성거리며 모여 삿대질을 하고 더러 카메라를 보며 히죽거리기도 하는 그들은 어찌보면 온전한 사회생활에의 기대를 버린 자포자기의 모습이자 엇나간 선거풍토에 대한 낯뜨거운 조롱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번의 돈봉투소동으로 정치권과 국가권력은 네가지의 큰 잘못을 저지른것 같다. 첫째 잘못은 나라와 국민을 올바르게 이끌고 다스려야할 정치권이 돈봉투돌리기로 앞장서 범법을 했다는 점이다. 막강한 윗물에서 흙탕을 일으켰으니 잘못의 연쇄파동을 무한정 촉발시킨 꼴이었다. 또 사건이 일단 터졌으면 잘못을 시인,수습에 나서야되는데도 괴청년들을 동원,항의주민들에 매타작을 안긴 역반하장의 추태마저 불사했다.

두번째 잘못은 선거관리의 부재와 포기였다. 돈봉투와 향응이 난무하는데도 권력과 힘이 두려워 그만 눈을 감아버린 선거관리당국의 태도는 중대한 직무유기라는 소리마저 듣는 것이다. 과거 동해보선초기 한동안 반짝했던 엄정한 「대쪽의 의기」도 어느새 실종되어 버린것만 같다.

셋째 잘못은 소극적인 외면수사의 고질이 되살아난 점이다. 더러 현지 선관위가 금품수수사건수사를 의뢰했으나 경찰은 명확한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우물쭈물해오다 뒤늦게 수사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돈받은 통장동생의 양심선언,가로챘던 금품의 뒤늦은 분배등 소동과 해프닝은 빚어지는데도 수사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별로라는 소식이다.

네번째이자 가장 큰 잘못은 법과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의식의 마비가 아닌가 싶다. 민의를 대변하겠다는 정치권과 의원후보가 앞장서서 돈을 뿌리고 법과 양심마저 무시하는데 우리 「아래것」들이야 못받은 돈이나 챙기면 그만이라는 방관과 불신의 팽배가 가장 두려운 것이다. 현대 시민사회의 주인은 시민인 것이고,그 시민들의 역할을 떠받치는 뼈대가 시민의식인데,그 시민의식이 이번처럼 흔들릴때 우리사회가 설땅은 진정 없어지는 위기인 것이다.

그래서 민심을 천심이라하는 모양이다. 내몫이나 내놓으라는 자포자기의 성난 시민들을 진정시켜 우리 사회에 화합과 신뢰를 구축하는 남아 있는 길은 이번 소동의 철저하고 정직한 처리뿐일 것이다. 그것마저 이뤄지지 못한다면 「영수증 주고받기」운운의 낯뜨거운 조롱을 막을길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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