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해는 또 뜬다」는 유명한 문학작품이다. 잃어버린 세대의 방황과 좌절과 갈등을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린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는 그 작품의 제목을 거꾸로 연상시키는 「해는 또 진다」는 이름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는 소식이다.영국의 무명저자 빌ㆍ에모트가 쓴 「해는 또 진다」는 향기 높은 문학작품이 아니라 경제대국 일본의 앞날에 대한 일종의 부정적 예견서라고 한다. 이작품을 통해 저자는 일본의 경제성장에도 한계가 있고 무역흑자 및 흑자잔고로 인한 엄청난 자본공급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저자는 일본의 모리타이시하라가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에서 이제는 엄청난 부와 선진기술을 바탕으로 누리는게 당연하다고 오만하게 주장했던 강대국 지위도 결코 보장된 것은 아니라고 꼬집고 있다.
일본인의 우쭐한 자존심을 꺾으려는 이 책이 요즘 모리타이시하라의 책을 내몰고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 연초부터 증시는 폭락을,엔화도 급락을 거듭해 찬바람이 일고 있는 요즘의 일본경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풀이이다. 그래서 일본 경제학자들 간에도 『지금은 좌석벨트를 조여 고공에서의 급락에 대비할 때』라는 경계론도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 및 서방선진국들과 일본과의 미묘한 관계 변화이다. 최근 외신보도에 따르면 일본측은 지난 87년의 뉴욕 증시폭락 사태 때 적극적 달러화 매입등으로 도와줬던 일을 들어 이번엔 미국측이 엔화 매입 등으로 그 은혜를 갚아주길 바라지만,미국측이 도대체 응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엊그제 폐막된 선진국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약세 엔화 도움에 나서기로 겉으로는 합의 했지만 사실은 일본측이 요청하는 만큼의 기여에는 주저하는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고 한다.
이같은 미묘한 변화야말로 탈냉전 시대를 맞은 국제 관계의 또다른 차가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세계를 갈라놓던 적과 우리편 이라는 생각이 차츰 사라지면서 어제의 한편끼리도 국가 이익 앞에서 이처럼 차가워지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 경제대국 일본이 「해는 또 진다」는 책이 예언한 정도로 쉽사리 기우뚱해 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류경제에 삼류정치와 행정,엄청난 부동산 값,인구 노령화와 일손 부족 등 그들이 안고 있는 취약점들이 일본의 더 높았던 콧대를 조금은 낮추게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시와 고르비가 짜고 일본 콧대꺾기에 나섰다는 소리마저 나오는 오늘의 국제현실은 우리에게도 여러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과연 우리에게도 경제 수준에 걸맞는 정치가 있는가. 우리의 부동산 투기나 분배문제는 방치해도 괜찮은가 등등…. 달라진 국제질서에 부응한다며 「신사고」의 기치를 앞세웠던 거대여당이 지금 하는 일은 개혁보다는 한편이된 어제의 적을 이빨빠진 호랑이 취급하다 자초한 내분잡기에 급급하고,경제는 내연하는 문제는 덮어둔채 무조건 달리기만 하면 된다고 보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국제관계에서도 국내문제에서도 누구라도 항상 떠올라 있는 해가 될수는 없음을 우리는 새삼 깨닫는다. 일단 뜬 해는 또 지는 것이어서 우리는 긴밤의 어둠에도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