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로 뛰어 당선한 자야말로 진짜 국회의원이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본의 어느 당료파 정치가가 오죽 선거가 괴로워 독백한 경구이랴.정치인들이 선거를 치르지 않고 국회의원이 된다면야 얼마나 즐겁겠는가. 하나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매서운 심판을 받기 때문에 국회의원에게는 힘이 생기는 법이다. 지역구 출신의원은 대지에 뿌리박은 나무,전국구의원은 화분에 심어진 화초로 비유되는 까닭도 알만하다.
진천ㆍ음성의 보궐선거에서 삼전사기로 첫당선한 허탁후보의 옷깃에 민주당(가칭)의 한 동료의원이 자신의 금배지를 떼어 달아주는 모습은 감회를 자아내는 광경이었다. 국회의원은 몇선이 되든 당선후 의사당에 처음 등원,금배지를 가슴에 달때가 가장 기쁘다고 한다. 비록 4∼5천원짜리 도금배지지만 그것은 대의원의 명패이자,입법권의 상징이다. 어떤 선량들은 개인 부담으로 순금배지를 특별 주문한다고 들었다. 순금배지를 달았다고 해서 꼭 유능하고 무게있는 국회의원이 되는게 아닌데도 말이다.
도금이건 순금이건 간에 의원배지는 적어도 그시점에서 민의와 민심을 반영한 것이므로 존경을 받는 것이다.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자가 상명하복식으로 의원배지를 달아주려하는 발상 때문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대구서갑구와 진천ㆍ음성의 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원인은 이미 숱하게 논란되어 새삼 거론할 계제가 아니다. 거대여당의 오만,개혁정책의 후퇴,밀어 붙이기 선거운동 양태등 그럴싸한 원인 분석을 매스컴을 통해 너무 들어왔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민자당은 후보를 결정하는 출발선부터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할 수있다. 그러니 그아래 단추와 단추구멍이 차례차례 안맞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광주사태의 책임을 지고 두어달전 의원직을 사퇴한 정호용의원은 정치도의상 나오지 말았어야 옳았다.
하나 그가 선거구민의 판단을 받겠다고 기어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상 김종필 최고위원의 말대로 기를 쓰고 사퇴시킬 일은 아니었다. 민자당은 원외지구당 위원장 선정기준에 따라 3당합당전 치러진 「4ㆍ26총선」의 차점자를 공천하는 것이 순리였다. 진천ㆍ음성도 사정은 크게 다를바 없다.
개헌선을 훨씬 웃도는 2백17석이란 거대의석을 보유하면서 두개의 금배지에 욕심을 내고 거기에 3당합당의 지지라는 명분을 부여한 것도 잘못이다.
마치 종기를 설 건드려 화근을 초래한 졸수가 아니었나 싶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꽃님엄마」의 유서소동,현직의원 40명의 동책임명에 따른 국회의원직 평가절하현상,행정력동원과 엄청난 자금살포등 여권의 자충수는 계속된다. 이러고도 국민이 외면않기를 기대했다면 오히려 불가사의 한 일이다.
누가 당선되어도 천하대세가 달라질 만한 판세는 아니었다. 「4ㆍ3보선」에 온통 여권의 멘즈(면자=체면)를 건 꼴은 볼성 사납기만 했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대목은 3당합당ㆍ보수대연합은 국회의원의 머릿수만을 모은 것이지 그들을 지지한 유권자까지 끌어들인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이치를 간과했다는 점이다. 민정ㆍ민주ㆍ공화3당이 합쳤으면 수리상으로 표가 그만큼 불어나야 할 터인데 현실은 역으로 나타나지 안했던가.
보선참패후 민자당내 내홍의 조짐도 심각해진것 같다. 김영삼 최고위원은 공작정치,당내수구적 발상을 마치 야당당수때 처럼 꾸짖고 나섰다. 생성과정 구성원의 체질이 다른 3당이 화학적 융해가 아닌 물리적 결합으로 합친 것이므로 이런 내분은 불가피한 진통인지 모른다. 하나 의회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은 군대식으로 일사불란하게 가동하는 조직은 아니다. 정치는 공작이나 작전과는 분명히 일선을 긋는게 옳다. 국민의 불만과 비판에 직면하면 겸허하게 이를 받아들여 그 해소 방법을 모색해야 되리라고 본다. 요즘 민자당 내부의 갈등을 차기 당권의 행방과 관련짓기도 하는 모양이다. 설사 그렇더라도 국민의 비판ㆍ저항에 대한 응분의 성찰은 있어야 마땅하다.
민자당이 본을 떴다는 일본 자민당도 총재경선때가 되면 당이 공중분해할지 모른다는 착각을 줄 정도로 파벌끼리 싸우게 마련이다. 다만 경선이 끝나면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하고 승자는 패자에게 그 지분을 인정한다는 전통이 은연중 서있는 것이다. 민자당은 초심에 돌아가 정책의 우선순위,인사,공천등 현안을 결정할때 국민의 참뜻을 거역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 민자당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지난 시절 야권에 몸담았던 민주ㆍ공화계는 「참여속의 개혁」은 커녕 집권의 들러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또한 이번 보선에서 미니 정당인 민주당의 선전은 괄목할 만하다. 마치 지난 85년 「2ㆍ26총선」때 신민당의 약진상을 보는듯 하다. 3당합당의 문제점,견제세력의 필요성,농정의 실패등을 정면으로 앞세운 정공법으로 야당불수지대인 충북에서 유일하게 의석을 획득했고 대구에서는 정신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민주당이 이번 승리로 우쭐해지고 자만해져 야권연대,통합을 등한시 하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할 우려가 있다.
「4ㆍ3보선」때 지역성 때문에 후보조차 내지못한 평민당의 고민은 이만저만 한게 아닐 것이다. 앞으로 2년뒤 거대 여당의 견제세력을 자부하는 평민ㆍ민주등 야권이 대립관계로 후보를 내어 서로 치고 받을 경우 여당이 그덕으로 어부지리를 얻을건 너무나 뻔한 일이 아닌가. 정치인들의 가슴속에 어떤 경륜ㆍ술수가 숨겨있는지 촌탁할 바 아니나 때로는 국외자의 눈에 바둑의 수순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민주당은 모처럼 돋아난 새싹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그리고 평민당은 지역당의 한계를 어떤 방법으로 풀어갈 것인지 한번 자문해보기 바란다. 해답은 상식의 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두당이 어떤 방식으로든 합쳐져야 하고 그 여건 조성을 위해 기득권의 포기도 서슴지 말아야 할게 아닐까. 그렇지 못할 경우 14대 총선에서 금배지의 판도는 크게 달라져 여촌야도가 아니라 야촌여도현상이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이다.【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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