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계속 내린 7일 하오 1시 서울 서초구 서초3동 1714 속칭 꽃마을 비닐하우스에서는 조촐한 경로잔치가 벌어졌다.인근에 우람하게 서있는 최신식 법원 검찰종합청사의 그림자가 닿을 것 같이 가까운 곳에 마련된 가설무대 주변에는 2백여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한 자리에 모여 앉은 것만으로도 즐거운듯 이들의 표정은 환했다. 보온용 비닐하우스 덮개 위에 비닐을 깔아 자리는 불편했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꽃마을에서 야학을 운영하는 대학생 풍물패들이 장구와 북을 치며 흥을 돋울 때는 어깨를 덩실거리며 바닥에서 스며드는 냉기도 잊고 있었다. 여흥과 함께 막걸리 한사발,국수 한대접씩을 들고 신명이 난 노인들은 노래자랑이 시작되자 목청을 돋우며 즐거워 했다.
이어 벌어진 척사대회는 국민학교 운동회 광경을 옮겨 놓은듯 했다. 윷가락이 가마니 위에 떨어질 때면 허벅지를 치며 『모』 『윷』을 외쳐댔다. 4시간여 동안 노인들은 고향에 되돌아간 기분 그대로였다.
부인과 단둘이서 고무조각을 주워다 팔아 끼니를 잇는다는 이재영씨(71)는 『비가 와서 벌이를 못하게 됐는데 잔치가 벌어져 신난다』며 끼니걱정도 잊은채 흐뭇해했다.
서초동 꽃마을 경로잔치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이 잔치를 주최한 꽃마을 자치회장 임의근씨(34)는 『매년 봄이되면 닥치게 될 당국의 철거에 불안해 하는 노인들을 한때나마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잔치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낸 푼돈과 구청 경찰서 마을상점 등으로부터 받은 찬조금 등을 모아 잔치를 준비했다고 한다.
주최측은 당초 서울시내 15개 비닐하우스촌 노인 2천여명을 모두 초청,대접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내린 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지난 5일 불이 나,비를 가릴 천막마저 잃은 인근 남태령마을 노인들이 불참한 것은 이들을 우울하게 했다.
한나절이나마 집을 못가진 설움을 잊었던 노인들은 잔치가 끝나자 다시 철거의 불안을 안은 채 흩어졌다.【이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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