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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책임 아직 끝나지 않았다/대일 보상청구운동확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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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책임 아직 끝나지 않았다/대일 보상청구운동확산:6

입력
1990.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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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피해/3만사망ㆍ3만부상에도 보상치료 발뺌/246명 숨진 미쓰비시공장도 임금 18만엔만 공탁/“돈보다 일 책임묻자”… 최근 23억불소송히로시마(광도) 나가사키(장기)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도 일제의 태평양전쟁 도발의 산물이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한국인 피해보상을 철저히 외면한채 무관심과 책임회피,차별과 냉대로 일관해왔다. 한국인 원폭피해자협회(회장 신영수)가 최근 협회에 가입해있는 피해자 1천5백64명에 대한 보상금ㆍ치료비및 사망자 보상금조로 23억달러를 요구하는 대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두르는 것은 당연한 책임 추궁이다.

일제의 군수공장이 집결돼 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징용으로 끌려갔거나 가족면회 또는 돈벌이를 위해 체류중 피폭당해 억울하게 숨진 한국인은 3만여명(히로시마 1만8천,나가사키 1만2천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인 전체피폭자 6만명중 살아남은 3만여명도 30%에 이르는 중환자는 귀국후 또는 일본현지에서 후유증으로 결국 숨졌다. 이시간 현재도 수천명의 피해자들이 한국과 일본에서 온갖 고생과 설움을 겪고있다.

그런데도 일본정부로부터 피해보상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본정부는 전후 「원폭 피폭자의 의료등에 관한법률」(57년) 「원폭피폭자에 대한 특별조치법」(68년)을 제정,일본인 피폭자와 그가족에게 의료수당 건강관리수당 개호수당 특별수당등을 지급하며 끔찍이 돌봐왔다. 이법은 다른 전쟁보상 관련법과 달리 이른바 국적조항을 두지 않아 한국인도 혜택을 받을수 있다. 그러나 혜택을 받으려면 피폭자임을 증명하는 「피폭자건강수첩」을 교부받아야 한다.

그러나 수첩을 교부받으려면 피폭당시의 이재증명서나 사진등의 기록서류,또는 당시 상황을 입증할수 있는 2인이상의 증명서가 필요한데 한국인의 경우엔 증명자 2인중 한명은 일본인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있어 큰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강제연행돼 일본말도 모른채 집단수용생활을 하면서 군수공장과 토목현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다 피폭이란 날벼락을 당한 한국인들이 그아수라장에서 공적인 증명서를 받아둘 기회가 있었을리 없다.

증인중 1명을 일본인으로 제한한것도 되도록이면 수첩을 주지않겠다는 심사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57년부터 지난해까지 건강수첩을 교부 받은 한국인은 재일 피폭자 1백38명과 한국거주 도일치료자 1백23명등 모두 2백61명(북한적 20명제외)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 피폭자의 억울함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보이는 사건은 미쓰비시(삼릉) 중공업 히로시마기계제작소 한국인 징용공들의 피폭및 귀국선 침몰사건이다. 히로시마 원폭투하일인 45년8월6일 이 공장에는 주로 경기일원출신 한국인 징용공 3천명이 강제 노역을 당하고 있었다.

공장은 피폭중심반경 5㎞이내에 있었으나 폭심지에서 좀 떨어진데다 전원이 실내에 있었기 때문에 사망자는 없었다.

부상자를 포함한 한국인들은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해 임금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채 다투어 귀국길에 올랐다. 이들중 2백46명이 그해 9월17일 목조범선을 전세내 북구주시 호전항을 떠났다가 대마도와 이키시마(일기도) 사이에서 태풍을 만나 몰사하고 만다. 이사실은 미쓰비시공장 지도원으로 한국인 징용공들과 가깝게 지낸 일본인 우카가와ㆍ소슈ㄴ(심천종준)씨가 한국가족들의 연락을 받고 끈질긴 추적끝에 73년 밝혀낸것.

우카가와씨는 76년 이키시마주민들로부터 당시 해안으로 떠밀려온 한국인 시체 1백50여구를 수습해 가매장했다는 증언을 듣고 발굴작업에 착수,86구를 발굴해 화장한 유해를 히로시마현의 복천방이란 절에 안치했다.

이 사건은 일본사회에서도 문제가 돼 일본정부는 83년 발굴조사단을 파견했으나 결과는 『대마도해안에서 발굴된 매장사체 40구가 미쓰비시 징용공이란 확증이 없다』고 발뺌하고 말았다. 한편 한국의 미쓰비시징용공동지회는 74년 대표를 미쓰비시에 보내 미불임금지급과 함께 조난 사망자유족에 1인당 2백만엔등의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이에대해 미쓰비시측은 『일체의 보상문제는 65년 한일조약으로 해결됐다』고 외면했다. 신통하게도 일본정부의 전후 보상문제에 대한 일관된 대꾸와 똑같은 말이었다.

미쓰비시측은 그러면서도 한국인 징용공 1천9백51명의 명부와 함께 당시 환율로 환산한 18만엔을 법원에 공탁해 놓고 있을뿐 유해 송환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이다.

반세기가 가깝도록 메아리 없는 외침을 계속해온 「한국 원폭피해자협회」와 산하 「미쓰비시 징용자 동지회」「미쓰비시 징용자침몰유족회」는 이제 다시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전후책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민단 히로시마본부 원폭피해자 특별대책위원장 강문희씨(70)는 『책임이 없다면서도 미쓰비시가 몇푼의 돈을 공탁한것은 내심 책임을 느끼고 있는 증거』라며 2백46명의 목숨값을 단돈 18만엔으로 계산한 그들의 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개탄했다.

「한국인의 인권을 지키는회」란 나가사키 시민단체가 펴낸 「한국인피폭자」란 책에도 『그러고도 우리만이 유일의 피폭국이라며 평화애호국인양 할수있느냐』는 일본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농축돼 있다.〈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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