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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 네팔국왕 비렌드라(뉴스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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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 네팔국왕 비렌드라(뉴스 메이커)

입력
1990.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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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일 힌두교국가 절대군주로 군림/영ㆍ일서 수학후 72년 즉위… 개혁 부분수용도 한계에세계유일의 힌두교국가 국왕이자 마지막 절대군주중 한사람인 네팔의 비렌드라 국왕(45)이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시위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네팔의 민주화시위는 그동안 인권탄압등 국내정치상황과 이웃 인도와의 불편한 관계로 인한 경제난 등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돼 오다가 동구의 변혁바람을 타고 지난달 중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시위는 불법화된 네팔 국민의회당(NCP)과 공산당내 7개정파,인권ㆍ학생운동단체들로 구성된 「네팔민주회복운동」 (MRDHR)의 주도로 이루어 졌으며,의사 변호사등 지식인층이 동조,파업을 벌이는 등 국민들의 호응이 그 어느때보다도 커 왕정붕괴의 가능성마저 높은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네팔은 지난 51년 비렌드라왕의 조부 트리부반국왕이 인도와 국민의회당의 도움으로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입헌군주국으로 출발했다.

트리부반왕의 아들 마헨드라왕은 55년 즉위,59년 국왕과 민선정부가 권력을 공유하는 민주헌법을 채택했으나 이를 2년만에 폐지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헌정체제가 중단되자 국민의회당등 야당세력들은 이의 회복을 요구하며 79년 폭동을 일으키는등 왕정체제에 계속 도전해 왔다.

72년 즉위한 비렌드라왕은 80년 국민투표를 실시,55%의 지지를 얻어 정당이 없는 의회제도로서 촌락회의의 일종인 「판차야트」 (국가평의회) 제도를 존속시켰다.

영국의 명문 이튼교와 일본 동경대,미하버드대 등에서 수학한 비렌드라왕은 언론통제의 완화등 개혁조치를 취하면서 국민들의 민주화요구를 일부 수용해왔으나 다당제등 정치개혁을 원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네팔민주회복운동」은 연25%의 인플레와 1인당 GNP가 1백60달러밖에 안되는 경제상황타개를 위해 과감한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네팔은 인도가 88년 네팔의 친중 노선정책에 대한 보복으로 국경선을 봉쇄하는등 경제제재조치를 취함에 따라 대외무역이 중단됐고 관광객의 수가 격감했으며 식량ㆍ연료난에 인도거주 네팔인들의 송금마저 끊기는등 심각한 경제난을 겪어왔다.

인도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민의회당과 중국에 기울고 있는 공산당은 지난 86년 총선서 무소속으로 16명의 의원을 당선시키면서 정치적 입지를 마련한데 이어 이번 민주화 시위에서도 일단 정치적목표 달성을 위해 제휴를 맺는등 왕정타도를 노리고 있다.

이같은 재야세력들의 움직임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것은 인도및 중국의 개입정도및 의도다. 특히 전통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도는 네팔의 정정불안을 가속화시켜 왕권교체를 유도,친인도체제의 옹립을 기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비렌드라왕이 국민들의 비난이 되어왔던 내각을 총사퇴시키고 민주개혁을 약속했음에도 불구,대다수 국민들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유혈사태로까지 발전한 것을 볼때 향후상황을 예측하기는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네팔의 정정은 비렌드라왕이 차기왕위계승자인 디펜드라왕자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하야함으로써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비렌드라왕이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샤데바」(범천왕ㆍ죽지않는왕)로 계속 군림할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장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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