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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자기쇄신을 위하여/한상진 서울대교수 사회학(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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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자기쇄신을 위하여/한상진 서울대교수 사회학(특별기고)

입력
1990.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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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성ㆍ전문지식 갖춘 기자 육성하라「신문은 사회의 거울」이란 말이 있듯이 요즘 신문을 보면 한마디로 표류하는 현실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수많은 사건의 홍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듯이 신문 역시 방향감각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특히 3당 합당이후 많은 신문들은 발빠른 현실적 타협으로 거대여당의 눈치를 보는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듯 하다. 원리원칙을 중시하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하기보다 「힘은 곧 현실」이라는 저널리즘의 약삭빠른 타산으로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거나 3당통합을 불가피한 것으로 수긍하는 비지성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신문이 매사에 정부ㆍ여당을 비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우리나라 신문이 과연 사회의 흐름을 한발 앞서 가면서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진단으로 사회변화의 방향을 이끌어 갈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신문이 사시를 걸고 여론을 형성해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흐름을 표면에서 뒤쫓아 가는데 바쁘기 때문에 외형적인 자유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는 아직도 권력에 약하고 광고주,구독자등 대중의 압력에 약한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좀 심하게 표현한다면 사회 안에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전개되면 이를 받아 「끓는 냄비」 처럼 온통 큰 소리를 내다가 이것이 침체되면 금방 보수의 입장으로 회귀하는 것이 우리나라 신문의 체질이라고 한다면 언론의 참다운 자율성이란 무엇이며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어디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회고해보면 우리나라 언론인들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심한 분열증으로 괴로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고 되었다. 직장인으로서는 보수도 많고 처우도 좋아 만족하는 편이었지만 언론인 본연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기자생활을 그만 두어야겠다는 반응도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뒤 박종철군 사건등을 거치면서 신문은 재빨리 민주화의 기수로 변신했으며 이 과정에서 광범위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신문은 이제 「무관의 제왕」으로서 막강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듯 하고 신문기자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90년대로 접어든 오늘의 시점에서 신문은 과연 그 엄청난 영향력에 걸맞는 민족적ㆍ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전환기의 혼탁한 격류속에서 변화의 방향을 옳게 잡아내고 있으며 이번 진천ㆍ음성 보선결과등에서 드러나는 민중의 호흡과 맥박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는가. 정론지를 표방하고 있는 신문의 기강이 근래 해이되고 있음을 알리는 징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언론인들은 경각심을 가져야 될 줄 믿는다.

하나의 보기를 들자면 신문들이 값싼 경쟁심에 휘말려 미확인 오보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되 기자들의 전문직 윤리가 이직도 저급함을 알리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신문이 값싼 상업주의에 빠져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른 예로는 소련 동구에 대한 보도가 편협하고 표피적이어서 국민의 보다 개방적이고 균형잡힌 세계인식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근거 없는 우월감,사회주의에 대한 천박한 이해,현실안주의 분위기를 신문이 부추기는 면이 없느냐는 것이다. 21세기의 새로운 문명을 향해 사회주의 국가들이 오늘날 체제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 비전있는 신문이라면 이 도전앞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에 대응하여 우리사회를 고쳐갈 것인가를 응당 물어야 하건만 이를 묻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서 사회개혁에 관한 신문의 어정쩡한 입장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ㆍ여당이 애당초 개혁의지를 가지고 토지공개념과 실명제를 내걸었던가에 대해 우리는 의문이 많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신문들은 혁명적 개혁이 없이는 체제유지가 어렵다는 주장을 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최소한의 개혁마저도 유예시킬 수 밖에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수용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듯하다.

단적으로 말해 전세값이 폭등하는 등 일반서민의 삶은 질곡에 빠지고 있건만 사회적 힘의관계를 반영하는 듯 신문은 사회운동이 약화되자 결국 힘있고 배부른자의 논리에 포섭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혼동과 방황 속에서도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고 보고 싶다. 현실은 표류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깨어있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젊고 근대적인 우리사회 「중민」은 성장하고 있으며 이들은 언론계 안에서도 자기혁신의 잠재력으로 커가고 있다.

신뢰받는 신문을 만드는 첩경은 결국 이런 기자들이 건강한 민중성과 튼튼한 전문지식으로 보도 논평을 통해 사회발전을 이끌어가는 능력을 갖추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신문기업은 과감한 제도개선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우수한 전문기자를 육성하는데 소홀히 한다면 기자들의 평균적 능력이 점차 소진되어 다른 사회부문에 뒤지는 사태가 올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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